장재형목사 제자도 강해: 고린도전서 9장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제자직의 길은 한 사람의 카리스마나 잠깐 타오르는 열정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교회가 장기적으로 건강하게 복음을 계승하고 전파하려면, 리더일수록 더 깊이, 더 철저히 제자 되어야 한다. 장재형목사는 오랫동안 성경이 보여주는 제자도의 본질을 뿌리 깊게 가르쳐 왔고, 그 가르침은 고린도전서 9장과 누가복음 9장의 두 축을 따라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바울이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아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했던 태도, 그리고 예수께서 세 사람과의 문답을 통해 드러내신 무소유, 복음의 우선성, 뒤돌아보지 않는 결단은 오늘 교회의 지도자가 어떤 디테일로 걸어야 하는지를 끝까지 비춰 준다. 이 글은 장재형(장다윗)목사의 통찰을 핵심 키워드로 삼아, 제자직이 어떻게 리더십의 표준이 되어야 하는지, 또 왜 그것이 네트워크 시대의 선교 현장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 되는지를 성경적 뼈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누가복음 9장에서 예수께 “어디로 가시든지 좇겠다”고 고백한 첫 번째 사람에게 주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응답하신다. 장재형목사는 이 대목을 단순한 금욕주의가 아니라 ‘무소유의 자유’로 읽어낸다. 문제는 소유 그 자체가 아니라, 소유에 묶이는 마음이다. 제자는 성령의 인도 앞에서 어느 자리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내적 자유를 훈련한다. 그래서 교회의 리더는 자원과 자산을 많이 다룰수록 오히려 더 가볍고 투명하게, 기꺼이 손을 털 줄 알아야 한다. 움켜쥐는 기술이 아니라 내려놓는 기술이 하나님 나라를 빠르게 전진시킨다. 장재형목사가 반복해 가르친 대로, 복음의 일꾼은 풍부할 때나 빈할 때나 형편에 휘둘리지 않는 균형을 익혀야 하며, 바로 거기서 제자도의 출발선이 놓인다.

두 번째 문답에서 예수께서 “나를 따르라” 부르시자, 그 사람은 “먼저 아버지를 장사하게 해 달라”고 청한다. 주님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단호히 말씀하신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을 인간적 도리의 폐기가 아니라 ‘복음의 우선성’에 대한 급진적 요청으로 해석한다. 제자는 선한 가치들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장례는 선하고 효는 귀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는 부르심이 임했을 때 그 어떤 선한 가치도 복음보다 위에 놓일 수 없다. 리더가 이 분별을 놓치면 공동체는 ‘좋은 일’들에 포위되어 ‘가장 중요한 일’을 잃는다. 교회가 사람을 살리는 본질을 지키려면, 리더는 가장 절박한 사람에게 가장 먼저 가는 결단을 반복해야 한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긴급성과 절대성’의 훈련이라 부르며, 일정·예산·감정의 우선순위를 하나님 나라 기준으로 재편하라고 요구한다.

세 번째 사람은 “가족과 작별하게 해 달라”고 말한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를 때 허락했던 바로 그 요청이지만, 예수께서는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선언하신다. 여기서 제자도의 세 번째 축, ‘뒤돌아보지 않는 결단’이 선명해진다. 과거의 성공과 실패, 익숙한 관계와 안전지대를 확인하려는 습관은 쟁기를 비틀고 논두렁을 어지럽힌다. 장재형목사는 이 말씀을 현대 리더의 언어로 번역한다. 비전과 미션이 선명해진 순간, 리더는 과거의 방식과 이해관계를 과감히 절단하고 공동체를 새 길로 이끌어야 한다. 복음이 전진하면 조직은 필연적으로 재편되고, 재편은 누군가의 안주와 충돌한다. 뒤돌아보지 않는 결단이 없으면 복음의 길은 머릿속 신념으로만 남는다.

이 세 가지 축은 마태복음 10장의 파송 원리와 맞물린다.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라”는 명령은 청빈의 낭만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일꾼이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시면서도, 동시에 제자가 소유의 무게에 끌려 다니지 않도록 초점을 맞추셨다. 장재형목사는 여기서 제자도의 독특한 균형을 읽어낸다. 한 손에는 청빈의 결단, 다른 손에는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절대 신뢰. 이 균형을 리더가 먼저 살아낼 때 팀은 근거 없는 무모함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신뢰를 함께 배운다. 결국 교회는 가난으로도, 돈으로도 사역하지 않는다. 복음으로 사역한다.

사도행전 18장은 이 균형이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 준다. 사도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장막을 만들며, 지원이 오기 전까지 필요한 것을 스스로 감당했다. 이른바 텐트메이킹, 자비량 선교의 기원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모델을 막노동의 미화로 보지 않는다. 그는 “전방 선교사”와 “후방 선교사”라는 역할 구분을 제시하며, 복음 전파의 효율을 공동체적으로 극대화하는 길을 연다. 어떤 이는 말씀과 기도와 전도에 전념하고, 어떤 이는 기술과 재정과 행정으로 병참을 구축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더 거룩한가가 아니라, 모두가 제자로 서느냐는 점이다. 전방과 후방이 제자도 위에서 서로를 섬길 때 복음은 가장 빠르게 가장 멀리 간다. 이 구조는 청년 사역자들이 경제 압박을 이유로 사명을 늦추지 않게 하고, 교회가 재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놓치지 않게 한다. 오늘의 스타트업 도시선교, 전문직 미션 필드, 글로벌 디아스포라 교회에서도 변함없이 유효한 균형이다.

이제 고린도전서 9장으로 들어가 보자. 바울은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 뒤, 곧바로“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리가 없겠느냐”라고 묻는다. 농부가 포도원 열매를 먹듯, 병사가 자기 비용으로 군복무하지 않듯, 복음 전하는 자가 교회의 지원을 받는 것은 성경적 권리다. 바울은 신명기 25장 4절,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말씀을 인용해 일꾼의 권리를 율법적·창조적 질서 위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곧이어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라”는 전환을 이룬다. 권리는 옳지만, 복음의 길이 더 옳다. 장재형목사는 바로 이 지점에서 리더십의 품격이 갈린다고 말한다. 권리를 정당하게 주장할 줄 아는 리더보다, 더 큰 가치를 위해 스스로 포기할 줄 아는 리더가 공동체를 성숙하게 만든다. 권리 포기의 자유, 이것이 제자도의 궁극적 자유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바울의 자비량이 교회가 일꾼을 섬기지 않아도 된다는 면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바울은 권리를 제도적으로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복음의 오해를 차단하기 위해 자발적 포기를 택했을 뿐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균형을 유난히 강조한다. 전방 선교사가 자비량을 선택할 때 후방은 더 철저히 섬김의 책임을 배워야 하고, 후방의 섬김이 넉넉할수록 전방은 더 담대히 권리를 내려놓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공동체 전체가 돈 문제에서 자유로워진다. 투명성은 절약보다 강력한 영적 병기이며, 권리 포기는 빈곤이 아니라 권능이다. 바울의 고백,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는 선언은 리더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직업윤리를 넘어 제자의 존재윤리다. 명령받은 일을 했을 뿐이라 말하는 ‘무익한 종’의 자세가 있을 때, 사역은 직업이 아니라 경배가 된다.

그렇다면 바울의 상은 무엇이었는가. “값 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것”이 바로 상이었다. 장재형목사는 이 대목을 ‘포기 자체가 상급이 되는 차원’이라 설명한다. 권리를 누려 얻는 만족보다 권리를 내려놓아 얻는 자유가 더 크다. 리더가 이 차원을 맛볼 때 불평과 비교는 설 자리를 잃고, 공동체에는 기쁨의 톤이 깔린다. 받아야 할 때 담대히 받고, 오해가 예상될 때 기꺼이 포기하며, 무엇을 하든 복음의 전진을 최우선으로 삼는 것—이것이 장재형목사가 정의한 제자도의 리더십이다.

현장 적용은 구체적일수록 힘이 있다. 첫째, 무소유의 자유를 위해 개인과 팀의 ‘필수—선택’ 기준을 정기적으로 재정렬하라. 사역 장비, 이동, 콘텐츠 제작, 공간 사용 등 모든 항목을 “복음 전진의 필수인가”라는 한 문장으로 재평가하면 예산과 시간이 동시에 가벼워진다. 둘째, 복음의 우선성을 놓치지 않도록 일정과 감정의 우선순위를 공동체적으로 점검하라. 장례·경조사·행정·대외 스케줄 등 선한 활동들이 비전을 갉아먹지 않도록 ‘가장 절박한 사람에게 가장 먼저 가는’ 원칙을 캘린더에 새기라. 셋째, 뒤돌아보지 않는 결단을 위한 구조를 만들라. 미션 피벗이 필요할 때 이해관계자 회의보다 먼저 팀 영성을 리부팅하고, 결정을 내렸다면 실행의 속도로 신뢰를 증명하라. 넷째, 텐트메이킹과 후방 병참을 분리 설계하라. 전방은 명확한 KPI 대신 ‘복음 도달’의 질적 지표로, 후방은 투명한 회계와 신속한 지원으로 서로를 지켜 주어야 한다. 다섯째, 재정과 권리에 대한 태도를 문서화하라. “곡식 떠는 소의 입” 원리와 “권리 포기의 자유” 원칙을 사역 규범으로 명문화하면 세대가 바뀌어도 문화는 남는다. 이런 실천은 장재형목사가 수십 년간 일관되게 강조해 온 ‘제자—리더—선교사’의 일치 속에서 더 강력해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체성이다. 바울이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했듯, 리더의 정체성은 사람의 박수나 온라인 평판이 아니라 생명의 열매로 확인된다. 장재형목사는 리더가 흔들릴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의 부르심”과 “복음이 낳은 사람들”을 기억하라고 권한다. 제자는 자신을 증명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부르신 분을 드러낸다. 그래서 장재형목사의 제자도는 언제나 “자기 부인의 기쁨”으로 마무리된다. 내가 줄어들수록 그리스도는 드러나고, 내가 비워낼수록 공동체는 채워진다. 권리의 사슬을 풀고 소유의 착각에서 깨어나며 과거의 미련을 끊는 그 길에서 복음은 가장 맑고 가장 멀리 흘러간다.

오늘 교회의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리소스가 아니라 더 깊은 제자도다. 누가복음 9장의 무소유, 복음의 우선성, 뒤돌아보지 않음이 마태복음 10장의 파송 정신과 맞물리고, 사도행전 18장의 자비량 모델과 고린도전서 9장의 권리 포기가 그 위에 구축될 때, 교회는 재정 논란과 이미지 관리에서 벗어나 오직 복음의 전진에 집중할 수 있다. 장재형목사가 일관되게 가르쳐 온 바로 그 길—전방과 후방이 함께 제자로 서는 길, 권리를 사용할 때와 내려놓을 때를 분별하는 길, 그리고 모든 것을 통틀어 그리스도의 영광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길—이 오늘 우리 앞에 다시 초청되고 있다. 제자는 더 가지는 사람이 아니라 더 자유로운 사람이고, 리더는 더 앞서가는 사람이 아니라 더 먼저 내려놓는 사람이다. 복음은 언제나 이런 제자들을 통해 다음 세대로 흘러간다. 우리가 장재형목사와 함께 배운 이 제자도의 표준을 오늘 우리 자리에서 실천으로 연결할 때, 고린도전서 9장의 영광스러운 정신은 설교의 문장 밖으로 걸어나와 도시와 캠퍼스와 가정의 골목골목을 밝힐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값없이 전하는 기쁨과 권리 포기의 자유가야말로 하나님이 제자들에게 미리 예비하신 가장 큰 상급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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