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데반의 순교– 장재형목사

1. 성령의 역사와 초대교회 모델
사도행전 6장은 초대교회가 어떻게 부흥하고, 어떻게 내부의 갈등을 해결하며, 또한 어떻게 교회 구조를 세워갔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본문이다. 장재형(장다윗)목사는 이 본문을 중심으로 성령의 역사가 처음 교회를 어떻게 빚으시고, 또 그 안에서 일어난 문제들과 해결 과정을 어떻게 성경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강조해왔다. 그는 사도행전 전체가 교회의 부흥과 성령의 역사에 관한 열쇠를 담고 있다고 말하며, 부활 신앙으로 충만해 담대히 복음을 증거할 때 많은 무리가 교회로 몰려오고, 그럴 때 교회 안에서 구제와 섬김 문제를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함을 역설한다.

6장 1절에 보면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는 부흥의 시기에 교회 안으로 수많은 사람이 유입되었음을 의미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언하고, 성령의 강력한 임재가 함께하자, 두려움도 물러가고 담대함이 생기면서 복음이 급격히 확산된 것이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부활 신앙이 충만했을 뿐 아니라, 회개하고 성령을 받은 덕분에 복음 전하는 일에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다. 그 결과 예루살렘 도처에서 수많은 사람이 교회로 몰려들었고, 자연스럽게 제자들의 수도 증가하였다.

그러나 성도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그 안에서 각종 문제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사도행전 6장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내부 갈등은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이 구제에서 제외되었다고 원망하게 된 사건이다. 헬라파 유대인은 헬라어를 쓰는 유대인을 가리키며, 이들은 원래 헬라 문화권에서 거주하다가, 노년이 되면 ‘수구초심’이라고 해서 죽기 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고, 그 땅이 하나님의 약속과 임재를 상징하니 노인들이나 과부, 가난한 사람들이 그곳으로 모여드는 일이 잦았다. 반면에 예루살렘 원주민들은 주로 아람어(히브리어 계통)를 사용했는데, 이런 언어적·문화적 차이가 교회 안에서도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의 두 그룹을 자연스레 만들어낸 것이다.

문제는 구제, 곧 ‘빵의 문제’에서 촉발되었다. 유대교 전통상 금요일 저녁이 되면 가난한 이웃에게 빵을 나누어주는 관습이 있었다. 초대교회도 이 아름다운 전통을 계승하며 공동체 전체가 함께 살아가려 했는데, 교인 수가 늘어나면서 자칫 일부가 소외되고 배제되는 일이 발생했다.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이 매일 구제에서 빠지는 일이 반복되자, 그들은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이는 공동체 안에 언어, 문화적 차이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었으며, 부흥의 순간이라 할지라도 인간적인 갈등이 벌어질 수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장재형목사는 이 대목을 해설하며, 교회가 부흥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교회라는 공동체는 영적인 측면과 현실적인 측면이 모두 존재한다.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하기를 전적으로 담당하는 사람이 필요한 동시에, 구제와 재정을 맡아 운영하고 관리하며 먹을 것을 공급해주는 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전방선교와 후방선교가 함께 존재해야 하듯이, 밥상을 차리는 이가 있어야 말씀을 듣는 이들도 편히 말씀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10장에 등장하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말씀 듣는 마리아도 귀하지만, 식탁을 준비하는 마르다 역시 귀한 역할을 맡은 사람이다. 교회가 사람을 많이 전도해 부흥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먹고 살아가는’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초대교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들을 불러 모아 대의를 묻고 함께 상의했다. 한 사람이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공평하고 공개적으로 공동체의 의견을 듣고 수합한 뒤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결론은 곧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말씀과 기도를 전무로 맡아야 할 사도들은, 구제 업무를 전담할 일꾼을 새롭게 세울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바로 이때 등장한 개념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집사(디아코노스, 헬라어로 디아코노스 혹은 디콘)’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과정을 가리키며, 교회 부흥의 원리를 사도행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자주 언급한다. 그의 설교에 따르면, 교회가 많이 성장한 다음에는 반드시 관리와 섬김의 체계가 필요하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해야 공동체 안에서 원망과 불만이 최소화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한국에서 개척교회를 하며 겪은 일화를 자주 드는데, 수십 명에서 백여 명이 될 때까지는 어떻게든 서로 음식과 재정을 나누며 버텼지만, 사람이 더 늘어나자 구체적인 시스템이 없으면 감당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엔 직접 수세미를 팔러 다니면서 교회 재정을 조달하기도 했고, 서로가 서로를 돕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지혜를 짜냈다는 경험담을 전해주곤 한다.

장재형목사는 또한, 교회 성장이 결코 경영 기법이나 세상적인 전략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고 말한다. 복음이 전파되고, 성령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부흥을 일으키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이므로, 겉으로 드러나는 운영 방식 이전에 먼저 하나님 말씀대로 교회를 세우고, 그 안에 기도와 말씀 사역, 섬김 사역이 균형 잡히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초대교회가 보여준 모델을 따라, 말씀 사역자(사도들)는 말씀 전하는 것과 기도에 전념하고, 구제와 재정·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집사들)이 체계를 마련해 혼선을 줄이면 자연스럽게 원망이 줄어들고 교회가 왕성해진다. 결국 교회가 어느 한 면만 강조하거나,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에게만 집중하기보다는, 전방과 후방, 기도와 행정, 가르침과 봉사가 조화를 이루어야 참된 공동체가 세워진다는 것이 핵심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대목을 확장해, 교회 안에는 다양한 직분과 달란트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예수님의 제자 중 가룟 유다가 재정을 맡았는데, 결국 영적 지혜가 부족했기에 돈 문제로 인해 시험에 들었던 것을 예로 든다. 교회에서 돈이나 구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야 하며, 그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다처럼 시험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따라서 초대교회가 집사를 세울 때에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 듣는 사람’을 골랐고, 그 가운데 스데반 같은 사람이 등장했던 것이 큰 시사점을 준다.

정리하자면, 성령이 세우신 초대교회의 모델은 다음과 같은 원리를 보여준다.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담대히 복음을 전하자 수많은 이가 교회로 모여든다. 그런데 인원이 급증하면서 행정적·재정적 문제, 구제 문제 등 현실적 어려움이 터져 나온다. 교회 지도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사람을 불러 모아 공의를 듣고, 집사를 세워 구제 업무를 나누어 맡긴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했다”(행 6:7)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는 적절한 분업과 섬김의 구조가 갖추어졌을 때, 교회 부흥이 더욱 견고해졌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속에서 스데반 같은 탁월한 인물이 등장해 복음을 더욱 확장하게 되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사도행전 6장에서 끝나지 않고 그 이후 스데반이 설교하고, 스데반이 순교하는 순간까지 초대교회가 겪는 여정에 주목한다. 스데반의 죽음이 일종의 시발점이 되어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퍼져나가는 국면전환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항상 자리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는 교회 안에서 문제가 생겨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방향으로 풀어나가면 오히려 또 다른 부흥과 확장이 일어난다는 역설을 시사해준다.

장재형목사는 또한 자신이 이끌어온 여러 사역의 사례를 통해, 초대교회 모델을 현대적으로 적용하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간증하곤 한다. 예를 들어, 교회가 글로벌 미션 허브로 변화되는 과정에서도 “기도하는 사람”과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뿐 아니라, “재정을 담당하고 구제를 맡아 섬기는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의료팀, 건축팀,예언자적 사역, 다양한 전문 직종의 헌신자들이 서로 긴밀히 협력해야 오늘날의 시대에 맞는 교회로 세워질 수 있다고 역설한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라면, 각자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기쁨으로 섬기고, 또 서로를 통해 더욱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과거에 자신이 여러 곳에 분교나 지부를 세울 때, 처음에는 다들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먹이고 재정을 마련하겠느냐?”고 염려했지만, 결국 하나님이 예비하신 방법이 있음을 체험했다고 말한다. 어떤 경우에는 직접 물건을 팔면서 재정을 마련했고, 어떤 경우에는 후방을 맡은 성도들이 열심히 일해 번 돈을 전방 사역자들에게 보내주었다. 이런 일이 모두 일종의 ‘디아코노스(집사)적 정신’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런 교회의 모습이 바로 사도행전이 증언하는, 초대교회가 가졌던 원형이라고 확신한다.

이처럼 교회의 부흥은 기도의 힘과 성령의 능력만 있으면 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섬김과 구제가 잘 조직되고 운영될 때 시너지가 극대화된다. 초대교회가 보여준 이 이상적인 협력 모델은 ‘마르다와 마리아가 함께 있던 집’처럼, 서로가 서로의 섬김을 귀히 여기고 존중할 때 제대로 작동한다. 말씀을 가르치는 이들은 더욱 말씀에 집중할 수 있고, 봉사와 구제를 맡은 이들은 재정, 식사, 생활 전반을 책임지며 공동체를 지탱한다. 그런데 둘 중 하나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공동체는 금세 균형을 잃고 불만과 원망이 고조되기 쉽다.

이에 대한 핵심은 바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을 세우는 것이다. 말씀이든 구제든, 어느 사역이든지 성령의 충만함이 우선해야만 흔들리지 않는 헌신을 해낼 수 있다. 재정이나 행정 사역에는 특히나 지혜가 요청된다. 영적 통찰 없이 재정과 사람을 다루다 보면, 눈앞의 숫자나 이익만 보게 되어 시험에 들기 쉽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기반으로 사람을 세울 때, 교회는 원망 없이 평안과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해져” 온 지역에 복음이 확산된다.

장재형목사는 본인이 과거 여러 국가와 도시에서 사역을 하며 배운 경험을 예시로 들며, 한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고 사람들을 모았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이 “구제와 재정, 운영에 대한 두려움”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사도행전 6장을 근거로 성령의 인도를 구하며, 기도와 말씀사역자를 지키고, 동시에 봉사와 구제를 담당할 적합한 사람들을 뽑아 기도로 안수해 세울 때 문제가 풀렸다는 것이다. 그렇게 교회 체계가 잡히면, 곧 말씀 사역은 더욱 뜨겁게 전개되고, 새롭게 온 영혼들도 떡과 밥으로 돌봄을 받으면서 안정감을 느끼며 교회 안에 정착하게 된다.

장재형목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교회가 확장될수록 건물이나 미션센터를 세우는 일, 의료·교육·후방지원·전방선교 등을 통합적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의 사역 가운데 국제적인 본부가 세워지고, 거기에 다양한 분야의 리더들이 모여 글로벌 선교와 세계 교회 부흥을 함께 도모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역시 결코 사람의 계획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 위에서 성령의 단계적 인도하심을 받았기에 가능했다고 고백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초대교회 원리를 붙잡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러나 장재형목사는 또한, 이런 확장이 언제나 순탄치만은 않음을 솔직히 말한다. 교회가 커지면 오히려 원망의 소지도 커지고, 다른 문화·언어권 사람들이 섞이면서 미묘한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과거 예루살렘교회에서 헬라파와 히브리파가 생긴 것처럼,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국제적인 성도들, 지역사회에 사는 성도들이 한데 모이면서 사소한 차이들로 인해 충돌이 생길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사도행전 6장이 보여준 대로, “집사를 세우고 함께 문제를 의논하며 해결하는 체계”이다. 지도자 몇몇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기보다는, 다 함께 모여 발언의 기회를 주고, 그 과정을 통해 지혜와 성령이 충만한 인재를 발굴하고, 그들에게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는 것이다.

집사를 세우는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 바로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했다”(행 6:6)는 부분이다. 이는 단지 구제만 맡기는 직분이 아니라, 교회가 영적으로 위임하고 성령의 기름 부음을 공식적으로 전수하는 중대한 직분임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성도들은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했다”(행 6:5). 교회가 영적인 권위로 임명하는 집사를 세웠을 때, 원망이 줄어들고 모두가 하나 되어 기뻐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졌다”고 기록한다.

장재형목사는 현대 교회도 이 패턴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래서 그가 교회를 세울 때 늘 강조했던 것이 “초대교회는 복음의 메시지, 성령의 능력, 그리고 체계적인 구제와 봉사가 함께 있었다”라는 사실이다. 교회가 그저 영적 사역만 강조하거나, 반대로 봉사나 구제만 지나치게 치중하면 균형이 깨진다. 두 축이 조화를 이룰 때 성령께서 활발히 일하시고, 그 공동체가 세상에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가끔 교인들이 “우리는 어떻게 재정을 해결하느냐? 어떻게 해외 선교를 감당하느냐?”고 묻거나, “개척교회가 사람이 늘어나면 감당하기 어려울 텐데 어떻게 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질 때, 사도행전 6장 이야기를 꺼낸다고 한다. 초대교회도 갑작스럽게 인원이 늘어나자 부득이 구제 담당 인원을 뽑았듯이, 오늘날도 성령과 지혜로 충만한 이들을 세워 서로 역할을 나누어 섬기면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이다. 물고기 한 마리가 물고 있던 한 세겔로 성전세를 낸 일화처럼, 전도를 많이 하다 보면 교회가 뻗어 나가는 만큼 새 길이 열리고 공급이 따라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가 강조하는 것이 “먼저 복음을 전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공급의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장재형목사는 교회가 성장하고 사역의 폭이 넓어질수록, 더욱 철저히 성령을 의지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인간적인 아이디어와 계획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계에 부딪힌다. 경영 기법으로 잠깐 반짝하는 성장을 이룰 수는 있지만, 진정한 영적 영향력과 지속 가능한 공동체 건설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대교회가 보여준 기도와 말씀 사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동시에 디아코노스 즉 집사 사역의 중요성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둘이 함께 움직일 때 교회가 든든하게 서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이뤄진다.

한편 그는 안디옥교회 모델도 자주 예로 든다. 안디옥교회는 기도하는 이들과 가르치는 이들이 함께 있고, 또 선교사들을 파송하기까지 배후에서 지원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처럼 교회는 한 사람, 한 직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은사와 달란트가 함께 모여서 하나의 몸을 이룬다. 사도행전 13장을 보면, 안디옥교회에 바나바와 시므온과 루기오와 마나엔과 사울 등이 모여 금식하며 기도할 때, 성령이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말씀하신다. 이를 통해 바울의 세계선교가 시작된다. 이 배후에는 안디옥교회의 든든한 후방 지원 체계가 자리하고 있었다. 장재형목사는 현대 교회도 마찬가지로 기도, 말씀, 구제, 행정, 선교, 예언 사역 등 일곱 가지 혹은 그 이상으로 영역을 확장해가며 건실한 공동체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종종 “우리 교회가 이처럼 일곱 영역을 잘 아우르자면, 정말로 수고스럽고 힘들지만, 그것이 초대교회가 보여준 길”이라고 말한다. 특히나 의사나 의료팀이 함께해야 몸이 아픈 성도들을 돌볼 수 있고, 교회가 지역사회의 복지와 의료 서비스를 담당하면서 지역 복음화에도 큰 몫을 감당할 수 있다. 또 건축 전문가들이 있어야 교회 시설과 미션센터를 건실히 지을 수 있다. 교육 전문가들이 필요하고, 예언자적 은사가 있는 이들도 필요하며, 행정을 맡아 교회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사람들도 필수다. 이처럼 다양한 직분이 한 교회 안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면, 자연스럽게 부흥이 일어나고, 성도들은 서로에게서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물론 장재형목사는,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라도 성령의 인도하심과 하나님 말씀의 기초가 없으면 금세 무너진다고 강조한다. 사람이 만든 체계는 온전하지 못하며, 언제든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사도행전 6장처럼,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인물을 세워 봉사의 일을 맡길 때, 놀라운 결과가 뒤따른다. “성령과 지혜”라는 두 요소는, 교회가 세상과 맞닿아 사역하며 필요한 핵심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지혜가 없으면 혼란에 빠지고, 성령이 없으면 영적인 파워가 사라진다. 이 둘이 합해져야 안정적인 성장과 강력한 영적 부흥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자신이 미국과 유럽, 아시아 각지에서 사역을 확장해 왔던 과정을 설명하며, 그 배후에는 언제나 디아코노스적인 인물들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들은 재정, 운영, 구제, 행정 등을 담당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교회를 든든히 세워 주었다. 그가 “앞에서 복음을 전하고 기도하며 가르치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헌신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늘 “전방선교가 귀하면 후방선교도 귀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전방에서 뛰는 사역자가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후방의 손길이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결국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지고 부흥에 이르는 길이 열리게 된다. 사도행전 6장 7절은 그 결론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들도 이 도에 복종했다.” 그 이전까지는 일반 백성 중심으로 교회가 확장되었으나, 이제는 종교 지도층인 제사장마저도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교회 부흥의 폭이 단순히 숫자적 증가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영향력까지 확대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는,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았던 “구제와 빵 문제 해결”이 있었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일컬어 “빵이 없으면 복음도 힘을 잃는다”고 표현한다. 사람이 먹고사는 문제를 등한시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실제로 체감하기 어렵다. 반대로 말씀만 강조하고 실제 돌봄과 구제를 소홀히 하면, 교회가 세상에 전할 메시지가 공허해질 수 있다. 초대교회가 모든 재산을 함께 나누며, 가난한 자가 없게끔 했다는 사실은(행 2:44-45, 행 4:34-35) 이런 이중적 균형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장재형목사는 바로 그 원리를 오늘날 교회에 적용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며, 교회 개척을 준비하는 이들이나 이미 교회를 운영 중인 이들이라면, 반드시 사도행전 6장이 보여주는 교훈을 놓치지 말라고 조언한다.

한편, 그가 종종 언급하는 또 다른 요점은 “부흥의 순간에 꼭 시험도 온다”는 사실이다. 사도행전 6장의 교회 안에 원망이 터져 나온 것처럼, 크게 부흥할 때가 곧 갈등이 생길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때를 잘 이겨내면, 교회가 한 단계 더 성장하고 단단해지는 계기가 된다. 교회가 전진만 하다가 멈추는 게 아니라, 시련과 갈등을 겪고 그것을 믿음으로 해결해낼 때, 그 공동체는 더욱 깊고 넓은 영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법대로 운영하고, 사람을 세울 때 성령의 충만함과 지혜를 기준으로 삼으라”는 것이 그의 일관된 메시지다.

장재형목사는 이 원리를 국내외 다양한 교회와 사역 현장에 적용해왔다. 그는 어떤 지역에서 교회를 세우든지, 먼저 지역 사회의 필요를 살피고, 구제와 섬김을 통해 복음의 문을 여는 방식을 취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이면, 그들과 함께 기도하며 말씀을 가르치는 팀을 세워 교회의 영적 토대를 공고히 했다. 이와 동시에, 재정과 행정을 맡아줄 수 있는 디아코노스 팀을 적극적으로 육성해 공동체가 자립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필요에 따라 문화사역, 의료사역, 교육사역도 병행하며, 다양하게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었다. 그 결과 한 지역이 건강하게 자리잡으면, 또 다른 지역으로 사역 범위가 확장되는 방식이다. 이것이 초대교회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해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으로 퍼져나간 것과 닮아 있다.

결국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부흥의 열매가 맺히면, 교회 내에 다채로운 직분과 은사가 공존하게 된다. 누군가는 기도와 말씀 사역에, 누군가는 구제와 행정에, 또 누군가는 의료나 교육, 선교에 특화된 재능을 발휘한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을 두고 “교회 안에 일곱 촛대처럼 다양한 영역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라 표현한다. 한 촛대만 밝게 빛나서는 충분하지 않다. 일곱 촛대가 골고루 밝히면, 그 빛이 더욱 넓은 영역을 환하게 비추게 된다.

그는 이 원리를 ‘SCRIBE 400’ 같은 표현으로도 확장해 설명한다. 옛날 공자가 2백 명을 데리고 토론하며 지냈듯이, 교회 안에서도 말씀 연구와 토론을 함께할 수 있는 핵심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영적으로 재해석하면, 단순히 지식 교류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깊이 있는 말씀 나눔과 기도가 시시때때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체들이 서로 ‘하나님의 형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본질적 평등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도행전 6장에서 열두 사도도, 교인들 모두를 불러 모아 의견을 묻는 과정을 거쳤다. 이는 초대교회가 이미 그 속에서 차별 없는 평등과 열린 구조를 실천했음을 시사한다.

장재형목사는 이처럼 성경에서 제시하는 원리를 “성경대로 교회를 만들자”는 기치 아래 실천해왔고, 앞으로도 그 길을 걸어갈 것이라 선언한다. 그가 30년 넘게 사역하면서 한국, 일본, 중국, 미국, 유럽 등지로 확장해온 발자취 속에는, 늘 사도행전 6장의 통찰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실제로 그가 이끄는 공동체들은,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말씀 사역팀(기도와 전도, 가르치는 일을 담당)과 디아코노스팀(구제, 후방지원, 재정, 운영)을 적절히 배치해가며 성장해왔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그 시스템을 연구·개선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더 확장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연약함과 갈등, 상황적 제약을 맞닥뜨릴 때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초대교회도 동일한 어려움을 겪었음”을 상기시키며, 낙심하는 대신 기도와 말씀으로 돌아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했다. 그래서 교회 안에 문제가 생길 때 오히려 “이 문제로 인해 교회가 더 체계를 갖추는 기회가 되겠다”고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교인들도 점차 사도행전 6장의 모델을 익히고, 집사라는 직분의 소중함과 무게를 알게 되면서, 함께 기도하고 섬기며 교회를 세워나갔다.

결론적으로 장재형목사는 사도행전 6장에 나타난 교회 부흥과 구제, 그리고 집사 제도의 등장을 통해, 오늘날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해준다고 강조한다. 말씀과 기도의 사역, 그리고 구제와 섬김의 사역이 균형을 잡을 때 원망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해져” 제자의 수가 더욱 늘어나는 부흥이 나타난다. 그 부흥은 단순히 숫자적 성장이 아니라, 제사장들마저 복음을 따르게 만드는 강력한 영향력으로 이어진다. 초대교회가 보여준 이 모델이야말로, 오늘날 현대 교회들이 회복해야 할 핵심이며, 장재형목사가 계속해서 주장하고 설파해온 핵심 키워드이기도 하다.

그는 끝으로, 이 모든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성경대로 하라”는 말이라고 전한다. “교회는 성경대로 만들면 된다. 성령이 처음 교회를 어떻게 만들어 가셨는지, 그 길과 비법을 잘 읽고 해석해 적용하면 누구라도 교회 부흥을 볼 수 있다.” 이것이 그가 사도행전 6장을 대할 때마다 설파하는 요점이며, 초대교회의 역사를 재현하려는 결단이다. 교회가 부활 신앙으로 충만하고, 성령 받기를 사모하며, 말씀을 가르치는 이들과 봉사와 구제를 맡은 이들이 긴밀히 협력하면, 자연히 두려움 없는 담대한 증거가 일어나고, 사람들은 몰려오고, 그로 인한 갈등은 오히려 교회가 더 체계를 갖추는 계기가 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교회는 점점 강건해지고, 결국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된다.

장재형목사는 이 비전을 품고 국내외 수많은 교회 개척과 선교 사역, 디아코노스 사역을 이끌어왔으며, 앞으로도 성경이 제시하는 대로 교회를 세워나가기를 소망한다. 이것이야말로 교회의 위기를 극복하고, 부흥을 지속하게 하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길이기 때문이다. 초대교회는 이미 그 해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고, 그 원리를 충실히 따르기만 하면 오늘날 어떤 문화권이나 시대적 환경에서도 능히 부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사도행전 6장의 모델을 붙들고 쉼 없이 섬기고 가르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반드시 임하게 된다고 그는 확신한다.

2. 디아코노스(집사)의 역할과 공동체
사도행전 6장은 교회 역사상 ‘집사’라는 직분이 공식적으로 세워지는 매우 중요한 장면을 다룬다. 교회가 급성장함에 따라 ‘구제’라는 실질적 돌봄 영역을 돌볼 인력이 필요해졌고, 그 결과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여 안수함으로써 집사직이 확립되었다. 이 일곱 명 중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 스데반이며,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안디옥 출신의 니골라도 함께 지명되었다.

장재형목사는 이 장면을 해석하며, 집사라는 직분이 결코 단순한 봉사·행정 업무만 담당하는 하위 직분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매우 중요한 책임을 맡은 이들이라고 설명한다. 초대교회가 집사를 세울 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자’를 기준으로 삼았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이는 교회 재정과 구제를 다루는 일이 영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중대한 과제라는 인식을 반영한다. 집사는 교회 공동체 내부에서 빵을 나누고 가난한 자를 돌보며, 재정을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한다. 이렇게 현실적인 돌봄이 이루어질 때, 말씀 사역자들(사도들)은 기도와 말씀 전파에 전념할 수 있게 된다.

장재형목사는 현대 교회에서도 ‘집사를 잘 세우는 것’이 교회 부흥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역설한다. 그에게 있어 ‘집사’는 어느 정도 교회가 성장한 뒤 절차상으로 임명하는 직분이 아니라, 교회가 처음부터 고려해야 할 기둥 같은 존재다. 교회를 개척해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재정과 구제를 전담해줄 누군가를 찾고 세워야 한다. 그러나 아무나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데반처럼 뜨거운 영성과 탁월한 지혜를 겸비한 이여야, 헬라파와 히브리파 유대인 사이의 원망까지도 중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장재형목사는 과거 한국에서 개척교회를 했을 때, 교회 재정이 부족하여 본인이 직접 수세미를 팔며 생계를 마련한 경험을 자주 예화로 들며, 결국 교회가 어느 시점이 되면 ‘집사적 역할’을 하는 이들이 반드시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스스로 수세미를 팔러 다녔던 시절은 말 그대로 초기 개척의 ‘긴급 대처 모드’였을 뿐, 장기적으로는 가장 이상적인 구조가 아니었다. “말씀을 전하는 자가, 동시에 구제 업무를 전담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사 직분을 맡은 이들이 나서서 운영과 구제를 담당하면, 목회자나 말씀 사역자는 더 온전히 기도와 가르침에 몰두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초대교회가 그 모델을 구현했기에, 예루살렘교회는 내적 갈등을 극복하고 더 크게 부흥했다.

또한 장재형목사는 집사를 ‘전방선교와 후방선교를 연결해주는 중추적 존재’로 이해한다. 교회가 전방선교, 즉 열방으로 뻗어 나갈 때, 후방의 물질적·영적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군대로 치면 병참 지원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집사들은 전 방면에 걸쳐 ‘공급선’을 세우고 관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교회가 확장되면, 자연스럽게 구제할 대상이 늘어나고, 재정 지출도 커지며, 운영이 복잡해진다. 이럴 때 집사들이 잘 세워져 있다면, 혼란 없이 체계적으로 뻗어갈 수 있다. 만약 잘 세워지지 않는다면, 부흥하다가도 내부에서부터 균열이 생길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여기에 “성령과 지혜의 충만”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역을 하다 보면, 재정 문제로 시험에 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재정을 맡았지만, 그 영적 수준이 뒷받침되지 않아 돈 문제로 인해 무너졌던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스데반은 정반대다. 그는 집사로 뽑혔으나, 설교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였고, 결국 유대 종교 권력자들과 변론해도 전혀 밀리지 않을 만큼 지혜와 말씀이 충만했다. 이것이 초대교회가 ‘누구든지 구제만 하면 되지’라는 식으로 대충 사람을 임명한 게 아니라, 철저히 영적 원리를 따랐음을 증명한다.

현대 교회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재정 전문가나 행정 전문가라 해서 집사를 맡겨서는 안 된다. 그들이 교회 재정을 담당할 때, 올바른 영적 안목과 성령의 인도를 구하지 않으면, 교회가 세상적인 계산법에만 치우칠 수 있다. 반대로 영적으로 뜨겁지만 재정 관념이나 지혜가 없는 사람이 맡아도 운영이 엉성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과 ‘지혜’ 둘 다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럴 때 ‘칭찬 듣는 사람’, 즉 교회 공동체 안팎에서 신뢰를 받는 인물이 되어, 진정한 의미의 집사 사역을 펼칠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집사의 역할에 대해 “마르다와 마리아 중 마르다에 해당하지만, 동시에 영적 안목도 필요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마르다가 없으면 식탁이 준비되지 않지만, 또한 말씀의 본질을 놓치지 않도록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열려 있어야 한다. 교회 구제와 행정이 단지 봉사로 끝나버리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초대교회처럼 구제와 말씀, 영성과 행정이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 그 공동체는 내외적으로 크게 성장하게 된다.

장재형목사가 운영 중인 여러 선교 단체나 교회들을 보면, 실제로 이 부분에 상당히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재정 투명성과 효율성, 그리고 구체적인 구제 활동 계획은 물론, 모두가 기도하고 영적으로 분별한 뒤에 진행한다. 단순한 이사회나 운영위원회가 세상 경영 기법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의지해 지체들의 지혜를 모으고 합의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리고 이를 담당하는 핵심 팀이 집사 역할을 맡은 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주 모여 회의하고, 현장의 상황과 필요를 살피며, 어디에 얼마나 구제나 재정을 배분할지 분별한다. 그 결과 교회가 자리를 잡고 부흥이 꾸준히 이어진다는 것이다.

나아가, 장재형목사는 디아코노스(집사)라는 헬라어 자체에 담긴 ‘섬기는 자’라는 의미를 한층 깊이 묵상하며, 이것이 교회의 나머지 사역들과 동등하게 중요한 것임을 강조한다. 집사직이 제대로 서 있는 교회는, 작은 부분 하나까지도 세심히 섬기는 문화가 자연스레 형성된다. 그럴 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차별 없는 성령의 공동체’를 체험하고,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이 실제로 구현되는 현장’이 된다.

결국, 교회가 커질수록 집사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초대교회가 이 사실을 가장 먼저 인식했고, 오늘날 교회도 그 길을 가야 한다. 사도행전 6장은 이러한 집사 직분이 왜 필요하며, 어떻게 세워야 하고, 어떤 열매를 기대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본문인 동시에, 장재형목사가 지속적으로 설교하고 적용해온 핵심 메시지이기도 하다.

교회 부흥의 길과 오늘의 적용
장재형목사는 사도행전 6장의 원리를 현대 교회가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줄곧 말해온 핵심은 “성령이 교회를 처음 만들 때 보여주신 패턴을 따라가면, 어느 시대나 어느 장소에서도 교회는 부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사역현장을 살펴보면, 복음 전도와 기도, 그리고 체계적인 구제와 봉사를 균형 있게 추진하고, 그 모든 과정을 지탱하는 ‘집사’ 역할의 팀을 든든히 세워두었을 때,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교회가 기본적으로 붙들어야 할 대전제는 “부활 신앙으로 충만해져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부터 5장까지 초대교회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할 때, 그 놀라운 소식에 많은 무리가 교회로 몰려들었다. 부활 신앙이 확실하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담대한 증거가 가능해진다. 이 증거가 폭발력을 갖추면, 교회의 외형적 성장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말한다. “교회 부흥은 결국 부활의 능력을 확신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느냐에서 시작된다. 그들에게는 죽음조차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므로,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두려워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이 몰려오고 부흥이 일어나면, 필연적으로 먹고사는 문제, 구제와 섬김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초대교회는 이를 예루살렘 과부 구제 문제로 체감했고,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로 수많은 요구와 돌봄이 필요해진다. 여기서 교회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관건이다. 장재형목사는 “사도들이 직접 구제와 재정을 맡아버리면, 말씀 전파와 기도의 불이 꺼질 수 있다”며, 초대교회가 보여준 것처럼 “전문적으로 구제와 섬김을 담당할 집사를 세워 시스템을 확립하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공동체 안팎으로 칭찬 듣는 이”여야 한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초대교회도 헬라어를 쓰는 유대인 집사들을 세우는 과정에서 언어와 문화 차이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투명하고 지혜롭게 진행하면, 다민족·다문화 시대의 현대 교회도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다는 게 장재형목사의 시각이다. 그는 실제로 여러 나라의 성도들이 섞여 있는 공동체에서, 일부 사람들은 영어를 쓰고, 일부는 현지어를 쓰고, 일부는 한국어나 다른 언어를 쓰는데, 그들 사이 갈등을 관리하고 돕는 집사들이 세워졌을 때 훨씬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부흥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이처럼 체계가 잡히면, 교회가 내적으로 충만해지고 외적으로 성장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사도행전 6장 7절이 “말씀이 왕성해지고, 제자가 많이 늘어났으며, 제사장들도 이 도에 복종했다”고 증언하는 것처럼, 현대 교회도 구제와 섬김의 체계가 잘 작동하면 말씀 사역이 더욱 활기차게 뻗어나간다.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실제적인 도움과 돌봄을 체험하면서, 동시에 강력한 복음의 메시지와 기도의 능력을 접하게 된다. 교회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는 현장’이 된다.

장재형목사는 특히 “허다한 제사장들도 이 도에 복종했다”는 부분에 주목한다. 이는 종교 권력층이었던 제사장들까지 복음의 능력 앞에 무너져 회개했다는 의미다. 결국 교회의 부흥이 단지 외형적으로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넘어, 사회적·종교적 리더십까지 움직이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이 장면을 들어, 교회가 사회 전체에 선한 파장을 미치려면, “말씀 + 기도 + 구제 + 섬김” 네 가지 축이 균형 잡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축이라도 무너지면, 교회가 사회에 제대로 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소리만 요란한 공동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교회가 안정적으로 부흥하면, 다음 단계로는 “세계 선교의 문이 열린다”고 말한다. 초대교회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그리고 로마까지 나아가며 지중해 전역을 복음화했듯이, 오늘날 교회도 한 지역에서 부흥의 토대를 마련하면, 그 힘으로 다른 지역에 선교 센터를 세워나갈 수 있다. 이때도 마찬가지로, 교회마다 디아코노스 팀을 두어 서로 물적·인적 자원을 공유하며 협력하면, 더욱 폭넓은 선교가 가능해진다. 장재형목사는 이 구조를 이미 여러 대륙에서 시도했고,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확장하기를 희망한다.

그는 종종 “이 시대는 복음의 위기가 아니라, 교회가 성경대로 조직되지 않은 위기”라고 말한다. “진리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고, 성령의 능력도 제한이 없지만, 우리가 사도행전이 제시하는 교회의 체계를 무시하고 그냥 인간적인 방식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교회가 할 일은 “사도행전을 읽고 그 모델을 해석해, 적극적으로 현장에 적용하는 것”이다. 물론 문화나 시대 상황 때문에 1세기 예루살렘교회를 그대로 복제할 수는 없지만, 원리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말씀 사역자, 기도 사역자, 구제와 재정을 담당하는 자, 의료와 교육, 그리고 예언적 선포나 건축 등 각 영역을 맡는 이들을 세워 균형 있게 협력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건강하게 기능한다.

장재형목사는 결국 이것이 “교회의 위기를 극복하고, 진정한 부흥으로 가는 길”이라고 확언한다. 그가 지난 수십 년간 걸어온 사역의 발자취도, 이 말씀을 실제로 살아내려는 몸부림이었다. 무수한 난관이 있었지만, 사도행전 6장의 교훈을 붙잡고, 디아코노스 팀을 세워 구제와 섬김의 틀을 갖추면, 교회는 강물처럼 은혜가 흘러들어오고, 원망과 갈등은 차츰 사라지며, 말씀 전파와 선교가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는 모두 성령이 이끄시는 초대교회의 영광을 꿈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의 교회가 아니라 성령의 교회, 사람의 방법이 아니라 성경의 방법으로 돌아가야 교회가 산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행전 6장은 오늘날 모든 교회에 던져진 하나님의 메시지라 할 수 있다. 교회는 여전히 성장할 수 있고, 부흥할 수 있고, 사회의 벽을 넘어서 복음을 퍼뜨릴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집사’를 비롯해 각자의 달란트를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믿는 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심지어 기존의 종교 지도자들까지도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초대교회의 위대한 역사를 다시금 재현할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이 메시지를 앞으로도 변함없이 전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도, 교회가 성경대로 세워지고 운영될 때 나타나는 놀라운 부흥과 역동성을 직접 목도하며, 하나님의 역사는 결코 한 시대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초대교회가 걸어간 길은, 21세기 현대 교회에게도 여전히 유효하고, 더욱 강력한 형태로 실현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설파하는 “사도행전 6장 교회 부흥의 비밀”이자,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디아코노스 사역”의 핵심이며, 교회가 세상의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근본 토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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