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육신 – 장재형(장다윗)목사

1.네 복음서의 상징과 예수 그리스도의 다면적 정체성장재형목사가 전하는 복음 메시지는 네 복음서가 보여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면적 정체성을 “계시록에 등장하는 네 생물”에 빗대어 해석하는 오랜 교회 전통 위에 서 있다. 그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각각 서로 다른 시대적·신학적 배경 속에서 예수님의 사역과 존재를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이러한 관점은 구약과신약을 아우르면서,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다층적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틀이 된다. 특히 이 전통적 해석은 계시록 4장에 언급되는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의 이미지가 네 복음서에 각각 대응된다는 중세 시기 이후의 해석적흐름과 닿아 있으며, 여기서 장재형목사는 그 이미지를 활용해 네 복음서의 핵심 메시지를 재조명한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서 그려내는 측면이 강하기에 사자로 상징되며, 실제로 마태복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 왕권을 계승한 참 왕이자 아브라함의 언약을 잇는 메시아임을 강조한다. 마태복음의 족보가아브라함과 다윗을 핵심으로 전개되는 것은, 유대인 청중이 관심을 두었던 혈통과 언약, 그리고 왕권 계승의 정통성에 대한 관심사를 그대로 반영한다. 아브라함부터 시작되는 혈통, 다윗으로 이어지는 왕권이 모두 예수님 안에서 성취된다는 사실이 드러나기에, 마태복음 1장부터 펼쳐지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단지 한 인물의 출생을전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구원사에 대한 소망과 기대가 어떻게 메시아 예수 안에서 결실되는지를 보여주는 신학적 드라마가 된다. 이런 면에서 장재형목사는 마태복음을 통해 예수님을 사자로 상징하는 전통을 되새기며, 만왕의 왕으로 오신 분의 위엄과 권능, 그리고 언약 성취라는 맥락 속에서 구원의 왕 되심을 설파한다. 반면 마가복음은 로마를 향한 실천적이고 빠른 호흡의 복음서로 흔히 이해되며, 로마인의 ‘즉각적 행동’과 ‘실용성’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을 고려하여 복음을 설명해간다. 예수님은 여기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제시되며, 장재형목사는 이를 희생적 봉사를 상징하는 송아지 이미지와 연결하여 설명한다. 마가복음에서는 “곧”이라는 단어가빈번히 등장하고, 예수님의 사역이 매우 재빠르게 이동하면서 기적과 치유를 연달아 행하는 모습이 담긴다. 이것은 예수님이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셨다는(막 10:45) 핵심 구절과도 직결된다. 송아지가 자신을 제물로 드림으로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는 상징적 이미지로사용되었던 구약 제사 제도와 맞물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희생을 완성하시므로 인류 구원을 성취하시기까지‘철저한 종’으로 순종하셨음을 보여준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통해 오늘날 신앙인에게도 주어진 섬김의 본이 무엇인지 설명하며, 복음이 단지 왕의 권세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종의 모습으로 이땅에 오셨음을 함께 강조한다. 누가복음은 인자를 상징하는 ‘사람’의 이미지와 긴밀히 연결된다. 누가복음의 족보는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는 예수님이 유대 민족만을 위한 분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구세주이심을 상징한다. 실제로 누가복음에는 가난한 자, 약자, 죄인, 이방인, 여성, 어린아이 등 사회적 주변부에 놓인 이들을 돌보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이 헬라-로마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누가의 시선, 그리고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 계획에 대한 신학적 강조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출생 소식을 들은 목자들은 당대에 그다지 존중받지 못하던 직업군이었지만, 그들에게 제일 먼저 천사가 소식을 전한다는 점, 시므온과 안나처럼 성전에서 예수님을 맞이한 경건한 이들만이 아니라 문둥병자, 세리, 죄인, 심지어는 로마 군인까지 포용하시는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누가복음은 인간성을 전면적으로 회복하시는 예수님을 보여준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두고 ‘인자(人子)’라는 호칭이 가지는 무게와 신학적 함의를 더욱 확장하여 설명하면서, 예수님이 단순히 유대인의메시아가 아니라 ‘온 인류가 찾는 구원자’가 되심을 되짚는다. 마지막으로 요한복음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독수리 이미지에 비유되곤 한다. 이 독수리 이미지는 예수님의 신적기원을 강조하며, 태초에 계셨던 로고스가 인간의 역사로 내려오시는 장엄한 사건을 가리킨다. “태초에 말씀이계시니라”(요 1:1)라는 장엄한 선언으로 시작되는 요한복음은, 헬라 철학으로 상징되는 그레꼬-로마 지성 세계 속에서 복음의 진리성을 변증하는 특별한 전략적 지위를 갖는다. 장재형목사는 요한복음이 기원후 1세기 말경에 쓰였음을 상기시키며, 이미 복음이 지중해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헬라 철학이 보편학문으로 자리잡은 상황 속에서, 저자 요한이 ‘로고스’라는 개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한 것은 대단히 독창적이면서도 선교학적으로 탁월한선택이었다고 말한다. 하늘에 존재하시는 분, 곧 무한한 높이와 권능을 지니신 분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내려오셨다는 메시지는 예수님의 신성을 극적으로 드러내며, 동시에 이 땅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한다. 이렇듯 장재형목사는 네 복음서가 제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양한 면모를 계시록의 네 생물 이미지와 결합해풀어냄으로써, 독자들이 예수님을 여러 각도에서 새롭게 응시하도록 돕는다. 왕, 종, 인자, 그리고 하늘 독수리로비유되는 예수님은 같은 본질을 지닌 한 분이시지만, 각 복음서가 강조하는 초점은 서로 다르다. 이러한 해석은교회의 오랜 전통 속에서 형성된 것이지만, 그것이 단순한 상징 해석으로 끝나지 않고, 오늘날 신앙인에게 예수님의 폭넓은 성품과 구원 사역을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해설 지침이 된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통해, 복음서가 특정 독자층과 시대적 배경, 선교적 목적에 맞추어 예수님을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지 살펴볼 때, 비로소예수님의 다면성이 통합적으로 다가오며, 그것이 복음의 풍성함을 맛보게 하는 길이라고 역설한다. 2. 태초의 로고스와 성육신 신비에 대한 헬라-로마 세계적 해명장재형목사는 이어서 요한복음 1장에 등장하는 로고스(말씀) 개념과 그 배경이 된 헬라 철학의 사상 세계를 심도깊게 다룬다. 헬라 철학자들은 우주가 어떻게 질서와 이치를 유지하는지, 변치 않는 보편적 원리는 무엇인지 궁구했고, 이를 로고스라 부르며 탐구했다. 로고스란 본질적으로 “이성적 원리” “말씀” “질서”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인간의 언어, 논리, 우주적 조화의 근본을 묶는 핵심이라고 여겨졌다. 이를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목함으로써, 당대 헬라 지성인들에게 매력적인 선교적 다리를 놓은 셈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요한의 선언은 창세기 1장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를 기억하는유대인 독자들에게 익숙한 동시에, 로고스 사상을 탐구하던 이방 지성인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유대인이라면 말씀이 곧 하나님의 창조적 도구라는 사실을 구약 성경 여러 곳에서 체득해왔고, 헬라인이라면 말씀이 곧불변의 우주 원리로서 철학적으로 탐구해야 할 대상이라 이해했다. 요한은 이 둘을 결합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 이전부터 하나님과 함께하신 분, 곧 하나님 자신이시며, 만물을 지으신 주체라는 폭발적 진리를 선포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지점에서 “예수님이 단지 예언자나 도덕적 스승, 혹은 유대인들만의 메시아가 아니다”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존재하셨고,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하나님과 동일 본성을 지닌 분이시다. 그러나 그분이 육신을 입고 사람 가운데 거하셨다는 사실 자체가 헬라 철학이 도달하지 못한 지점이었다. 헬라 철학자들에게는 신적 존재가 물질세계로 내려온다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았다. 오히려 플라톤적 사유에 따르면 신적·이데아적 세계는 물질계에 오염되지 않는다. 하지만 요한은 바로 그 불가해 보이는 사건이 역사적으로 일어났음을 ‘성육신’이라는 단어로 선언한다. 성육신(Incarnation)의 본질은 무한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의 몸을 취하셨다는 점에 있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께서 죄와 어둠에 빠진 인류에게 친히 찾아오신 사랑의 절정’이라 말한다. 율법과 예언자들을통해 수 세기 동안 하나님을 가르침받았던 이스라엘조차, 실제로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사건은 전혀 예상치못한 수준의 충격이었음을 역사적 문맥 속에서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헬라 철학자들이나 로마의 권력자들은‘신의 아들이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그리스·로마 신화의 잡다한 신화적 일화로 혼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그것이 신화나 전설이 아니라, 실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어난 사건임을 복음서 전체의 전개를 통해 증명해 나간다. 장재형목사는 ‘로고스’라는 개념이 가지는 문화·역사·선교적 가치를 언급하며, 교회가 복음을 전파할 때 어떤 언어적·개념적 틀을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모범으로 요한복음을 제시한다. 복음이 유대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과 온 인류에게 퍼져나가야 했기에, 헬라 철학을 어느 정도 수용하고 그 언어를 변형하여예수를 선포하는 것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특히 사도 바울이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해 논하면서 헬라 문학과 철학자들을 언급했던(행 17장) 모습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그리하여 요한복음 1장 3절,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라는 구절은 예수님의 신성과 창조주 되심을 분명히 한다. 예수님은 태초 이전부터 존재하셨고, 우주와 역사의 주인이며,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신다. “그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는 이어지는 구절은, 예수님을 떠나서는 어떠한 생명과 빛도존재할 수 없음을 암시한다. 장재형목사는 여기서 “‘빛’이란 단지 윤리적 가르침이나 인식론적 깨달음이 아니라, 죄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새 창조를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설명한다. 어둠과 혼돈의 지배 아래있던 인류 역사는 예수님을 통해 비로소 참 진리를 맞이하게 되며, 이는 복음이 가진 ‘어둠을 뚫고 들어오는 빛’이라는 역동적 특성을 부각시킨다. 결국 장재형목사가 요한복음 1장에서 반복해 강조하는 것은, 성육신은 단지 한 철학적 개념을 그럴듯하게 재활용한 것이 아니라, 신학의 핵심 진리를 깊이 있게 펼쳐내는 사건이라는 사실이다. 유대적 뿌리를 두면서도 이방 세계에 복음을 선포해야 했던 초대교회 입장에서는, 이 로고스 사상의 접목이 복음 전파의 지평을 크게 넓혔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신앙인들은 헬라적·서구적 사고, 혹은 과학적·합리적 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예수님이 곧 모든 것의 근원이자 중심”임을 도전적으로 선포해야 하는데, 이것이 요한복음의 ‘로고스’ 도입이 준교훈이라는 점을 장재형목사는 짚어낸다. 3. “말씀이 육신이 되어” 임하신 은혜와 진리의 충만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는 구절은 기독교가 말하는 성육신의 전모를가장 장엄하면서도 간결하게 표현해 준다. 이 말씀을 장재형목사는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과 자기 비하의 결정체’라고 소개한다. 왜냐하면 무한하시고 절대적 거룩을 가지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은, 상상을 초월하는 사랑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종교사나 철학사를 살펴보면, 신이 인간이 된다는 이야기는 흔히 신화적 상상 안에서는 종종 등장하지만, 그것이 역사적 사실로서 증명되고, 더 나아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셨다는 내용은 오직 기독교 복음 안에서만 발견된다는 점이 두드러진 차이이다. 장재형목사는 이어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사건이 가져오는 결과를 크게 두 갈래로 설명한다. 첫째로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인간이 다시금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고, 둘째로는 그 만남이단지 종교적 예식이나 의무감에 머무르지 않고, ‘은혜와 진리’의 충만을 체험하는 실존적 해방으로 이어진다는점이다. 죄로 인해 굳게 닫혔던 에덴동산의 문이 예수님 안에서 재개방되며,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다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성육신은 구약에서 예언된 여러 메시지를 결집시키는 정점이기도 하다. 이사야가 예언한 임마누엘(사 7:14), 곧‘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말씀이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 역사 안에 구체화된다. 모세가 “나 같은 선지자를하나님께서 일으키실 것”이라고 예언했던(신 18:15) 그 인물은 바로 예수님이시며, 다윗 왕조에 영원한 왕이 세워질 것이라는 약속(삼하 7:12-13)도 예수님께서 이루신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구약과의 연속성을 강조하면서, 성육신은 신약만의 파격이 아니라, 태초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구원 경륜이 완성되는 열쇠라고 역설한다. 더 나아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 사랑과 진리가 완전하게 구현되었음을 의미한다. 구약의 율법은 죄를 보여주고 심판을 경고함으로써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드러낸다. 그러나 복음은 죄인임을 자각한 이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이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길을열어준다. “진리” 역시 예수님 안에서 계시되는데, 이는 단지 교리에 대한 인지적 통찰을 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식과 존재의 목적을 체험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을 뜻한다. 장재형목사는 율법으로는 불가능했던 구원, 즉 인간 스스로는 결코 얻을 수 없었던 죄 사함과 영생을 예수님이 성육신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의 죽음으로 이루셨음을 상세히 해설한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5장에서 예수님을 ‘두번째 아담’으로 설명하듯이,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와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으나, 예수님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의와 생명이 다시 열려 온 인류에게 주어졌다. 이 교리는 성육신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이되지 않으셨다면, 십자가의 속죄가 어떠한 의미로도 성취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성육신을 통해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는 비극적 상황이 일시적으로 나타나지만, 궁극적으로는 참 빛이 이미 세상에 임하였고, 누구든지 이 빛을 받기만 하면 구원에 이른다는 소망의메시지가 함께 선포된다. 장재형목사는 어둠에 익숙한 세상이 빛을 거부하거나 알아보지 못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신앙인은 이런 비극을 통과하더라도 끝내 빛이 승리할 것이라는 종말론적 희망을 붙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수를 영접하지 못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은 그 시대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복음을 알아보지 못하는 많은 이들의 모습과 겹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은 결코 꺼지지 않으며, 예수님 안에서 은혜와 진리의길이 활짝 열려 있다는 사실이 성육신의 결정적 의미라고 강조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성육신 사건을 성탄절과 직접 연결시키면서, 크리스마스의 본래 의미가 단지 “아기 예수의 탄생”으로 축소되지 않기를 당부한다. 그 아기 예수는 곧 태초의 로고스이며,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고, 결국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인류 죄를 대속하실 분이다. 아기 예수 탄생이 귀엽고 따뜻한 이미지를 준다 할지라도, 그 속에는 하나님의 무거운 구원 드라마가 내재해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성육신은 우주적 사건이며, 역사의 흐름을바꿀 정도의 파급력을 지녔고, 인간의 죄 문제에 대한 완전한 해답을 제시하는 구원의 시작점이다. 4. 어둠과 죽음의 현실을 뚫는 구원의 빛과 성탄의 신학적 의의장재형목사는 복음을 때로는 “슬픈 이야기”라고 부른다. 그 까닭은 죄와 죽음, 어둠의 지배 아래 있는 인간의 비극적 현실이 복음의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타락하여 하나님을 떠난 순간부터, 역사는 끊임없이 죄의 사슬, 우상 숭배, 영적 방황을 반복해 왔고, 결국 죽음이라는 운명 앞에서 어떤 철학도, 어떤 제도도 근본적 해결책을제시하지 못했다. 이 같은 절망은 구약의 역사와 율법이 보여주는 인간의 한계, 그리고 세속 정치 권력과 의식 체계가 드러내는 불완전함을 통해 더욱 극명해진다. 그러나 이 슬픈 이야기는 동시에 “희망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어둠 한가운데로 하나님 스스로가 들어오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신성의 영광을 지니신 분이지만, 그 영광을 스스로 버리고 가장 낮은 자의 자리, 곧구유에서 태어나셨다. 장재형목사는 이 사실을 두고 “하나님이 인간 역사에 가장 낮은 모습으로, 연약하고 불안정한 아기의 모습으로 들어오신 것은, 그 누구도 제외되지 않는 포괄적 구원을 의도하신 것”이라 설명한다. 부유하거나 건강하거나 지위가 높아야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힘없고 가난하며 소외된 이들조차도 마음 문을 연다면 예수님을 맞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성탄절은 이런 맥락에서 역사적 분기점이 된다. 예수님의 탄생은 BC와 AD를 가르는 상징이 되었으며, 교회는 예수님의 오심을 기점으로 시간 개념을 새롭게 설정해 왔다. 구약 시대가 아무리 절망적이고 율법의 멍에가 무거웠을지라도, 이제 예수 안에 있는 이들은 새로운 시대로 들어간다. 이것을 장재형목사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부른다. 어둠의 지배가 종말을 고하고, 빛의 통치가 시작되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복음 이야기를 조금 더 따라가 보면,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 그분의 고난과 죽음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알게 된다. 인간들이 기다렸던 메시아가 막상 오셨을 때, 많은 이들이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거부하고 죽이기까지 했다. 이는 요한복음 1장 11절,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라는 구절로 요약된다. 장재형목사는 이 사건이 복음의 슬픔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빛과 진리가 어둠과거짓 앞에 선포되었을 때, 세상은 환영하기보다는 거부와 폭력을 선택했다. 이로써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처참한 죽음에 내던져졌고, 제자들은 흩어졌다. 그러나 복음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예수님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인류 구원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장재형목사는 십자가가 “영광의 보좌”가 되었다고 말하며, 예수님의 죽음 안에 구원 계획이 완성되는 신적 역설을 강조한다. 이는 십자가 부활 사건으로 이어지면서, 예수님이 단지 역사 속 한 비극적 순교자로 머무르지 않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산 소망’의 창시자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성탄절의 아기 예수는 그 자체로 구원의 결실을 담기보다는, 십자가와 부활을 향해 나아가는 서막, 곧 하나님의 예정된 드라마의 시작점임을 이로써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장재형목사는 성탄절을 단지 “아기의 탄생” 축하로 소비하지 말고, 그 아기가 궁극적으로 걸어가신 길, 그리고 그 길이 인류에게 열어놓은 구원의 문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성탄절의 기쁨 뒤에는십자가의 고통이 자리하며, 그 고통은 다시 부활의 승리로 이어진다. 이 과정을 온전히 꿰뚫어볼 때, 우리는 성육신의 진정한 깊이를 헤아릴 수 있고, 복음이 제시하는 ‘눈물과 사랑과 희생을 통한 진리와 은혜의 완성’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끝으로, 장재형목사는 성탄절이 매해 돌아오는 기념일이지만, 그것은 결코 ‘반복’에 머무르지 않고 ‘갱신’이어야한다고 주장한다. 구원의 은혜는 생생하게 매일 새롭게 경험될 수 있으며, 그 경험은 신앙인이 세상 속에서 빛과소금으로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된다. 어둠 속에 갇힌 이들이 여전히 많고, 죽음과 절망이 만연한 시대에 예수님의 성육신은 단지 2000년 전 사건으로 지나간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빛으로 우리를 비춘다. 우리는 그 빛을 따라 걸으며,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은 존재라는 인식을 가지고 세상 가운데 파송된다. 장재형목사는 이 부분을 현대 교회의 선교적 사명과 연결하며, “로고스가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임하신 것처럼, 교회 역시 복음의 메시지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언어와 행동으로 세상에 전해야 한다”는 점을 짚어낸다. 결국 성탄은 사랑으로 오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절기에 그치지 않고, 그 사랑이 교회를 통해 세상 끝까지 확장되는선교의 시발점으로 작동해야 한다. 성육신은 이 땅의 고난과 연약함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직접 감당하신 하나님의 결정적 행동이었기에, 교회 역시 세상의 고통과 아픔을 지켜보는 데 그치지 말고, 그 속으로 들어가 복음을 실천하고 증언해야 할 당위를 지니게 된다. 장재형목사는 “성탄절을 지날 때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돌봄과 구원의 열정을 다시금 떠올려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를 통해 복음 메시지가 단순한 종교 이념이 아니라 실제 삶의 변화, 역사와 문화를 바꾸는 생명력이 됨을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처럼 장재형목사가 전하는 복음 이해는 네 복음서 각각에서 드러나는 예수님의 정체성과 로고스 개념의 선교적 확장, 그리고 성육신의 은혜와 진리를 구체적으로 연결시켜, 성탄절을 기점으로 해서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가얼마나 광대하고 심오한 차원에서 펼쳐지고 있는지를 되새기게 한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성탄 시즌에 예수님의아기 모습을 떠올리며 일시적 감상에 젖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분이 걸어가신 길과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을 체화하는 삶을 살아가야 함을 깨달을 수 있다. 복음은 과거 어느 시점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를 통과하여 미래로 향하는 살아 있는 진리이며, 성육신은 지금도 우리의 삶을 뒤흔드는 충격이자 감동으로 다가와야 한다. 장재형목사가 설파하는 이 네 가지 흐름—네 복음서의 상징, 태초의 로고스와 성육신, 은혜와 진리의 충만, 그리고 어둠과 죽음의 세계에서 밝히는 구원의 빛과 성탄의 의미—은 각기 다른 조명처럼 보이지만, 결국 한 지점을가리킨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분 안에서 펼쳐지는 우주적 구원 이야기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제시하는 예수님의 면모는 역사적, 신학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채롭게 표현되지만, 그 결론은 동일하다.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계시며,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부활하심으로 어둠을 몰아내고 생명의 빛을 확립하셨다. 이 복음이 전달되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 중 하나가 성육신 사건으로, 성육신은 인류가 다시금 창조주의 품으로 돌아가는 길을 여는 시작이 되었다. 아무리 캄캄한 시대라도 빛은 침투해 들어올 수 있으며, 죄와 죽음의 사슬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 끊어질 수 있다. 교회는 이 메시지를 전해야 할 사명을 부여받았고, 성탄절은 그 사명을 다시금 다짐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교회 전통에 따르면 대림절(대강절) 기간은 예수님의 오심을 예비하고 묵상하는 시기이기에, 장재형목사는 이 시기를 통해 복음서의 메시지를 깊이 탐구하고 성육신 신학을 묵상함으로써, 성탄절의 진정한 기쁨을 체험하고 삶으로 실천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결국 장재형목사는 단순히 “성육신”이라는 개념적 교리를 설명하는 수준을 넘어서, 그 교리가 인간의 존재와 삶, 사회와 역사 전체에 미치는 함의를 다룬다. 우리가 전에는 죄와 두려움,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요 1:12)를 주셨다는 사실은, 종교적 율법주의나 형식적 의식주의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해방이다. 신앙인이라면 이 구원의 기쁨을 매일 새롭게 곱씹어야 하고, 그 기쁨이 세상의 가치관에 순응하거나 절망에 빠지기 쉬운 우리를 다시금 깨우며, 빛의 자녀로서 살도록 이끈다. “성육신”은 과거 한 시점에서 끝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을 살 때마다 재현되고, 교회 공동체가 세상 한복판에서 복음을 실천할 때마다 드러나는 살아 있는 신비다. 이것이 장재형목사가 끊임없이 설교와 저술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이며, 요한복음 1장을 깊이 파고들어 헬라 철학적 맥락, 유대적 언약 전통, 로마 제국의 세계관 등을 종합해가며 펼쳐 보이는 복음 해석의 맥락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종착점은 바로 “예수는 누구이신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귀결된다. 네 복음서는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라는 상징을 통해 예수님의 정체를 폭넓게 드러내고, 요한복음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는 장엄한 문장은 예수님이 곧 영원 전부터 계셨고, 모든 피조물과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천명한다. 그분이 육신을 입고 오셨기에 우리는 이제 그분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참 생명의 소유자로, 진리의 길 위로 나아갈수 있다. 성탄절은 이 위대한 사실을 경축하는 날이요, 동시에 우리 스스로에게 “나는 이 성육신의 진리를 어떻게나의 삶 속에 담아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거룩한 기회이다. 장재형목사는 마지막으로,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 시대의 교회와 신앙인들에게 “눈물 없는 복음은 없다”는 말을곱씹으라고 조언한다. 복음은 예수님의 눈물과 희생 위에 세워진 이야기이고, 그 예수님을 보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아픔과 사랑이 녹아 있다. 그러므로 복음을 진실로 전하고 따르는 이들이라면, 이웃의 아픔과 세상의 고통에대해서도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하고, 구원 메시지를 ‘말’만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성육신의 하나님은 결코 인간의 고통을 방관하지 않으셨고,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오셨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 하나님을 섬긴다면, 세상의 밑바닥을 외면해서는 안 되며, 성탄절을 축하하는 각종 이벤트도 단순히 화려한 조명과 음악, 선물 교환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오히려 소외된 이들을 초청하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는 실천 속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임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체현하는 것이 성탄의 본래 정신이다. 이상과 같이 네 가지 주제를 통해, 장재형목사가 해설하는 복음 메시지와 성탄의 신학적 의미를 간략히(그러나사실상은 매우 심도 있게) 살펴보았다. 그가 역설하듯, 네 복음서가 각각 다르게 펼쳐 보이는 예수님의 얼굴은 결국 한 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귀결되며, 요한복음의 로고스 개념은 그 예수님의 신성을 철학적 언어로 드러낸다. 이 성육신 사건은 은혜와 진리의 충만을 가져오고, 어둠과 죽음의 세계에 결정적인 빛을 비추며, 성탄절은 이 구원의 드라마가 역사상으로 열리기 시작한 극적인 분기점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와 신앙인이 매년 기념하는날이면서도, 해마다 새롭게 갱신되어야 할 종말론적 소망이기도 하다. 장재형목사가 결국 강조하는 핵심은, 성육신이 교리를 배우고 암기하는 지적 대상이 아니라, “신앙의 출발이자모든 것의 기초”라는 사실이다. 예수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신비가 없다면, 우리의신앙은 결국 인간적 추측이나 종교적 열심에만 의존하게 되고,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을 만한 하나님의 역동적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성육신이야말로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는가”를 웅변하며,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설명해주는 열쇠이며,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의 원천이다. 그리고 이 성육신은 성탄절로 상징되지만, 십자가와 부활, 성령 강림으로 이어지는 완전한 구원 서사의 일부다. 우리가 이 전체 서사를 놓치지 않고 붙들 때, 비로소 성탄의 기쁨과 부활의 소망이 이어지고,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바라보는 온전한 기독교적 비전을 가질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매년 성탄절을 지날 때마다, 그저 행사나 축제의 분위기에서 스쳐 지나가지 말라”고 도전한다. 오히려 이 시기를 거룩한 묵상과 회개, 그리고 구원의 감격으로 채움으로써,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다시금 확인하고 세상에 드러내라는것이다. 결국 성탄을 맞아 기억해야 할 진리는, 우리가 전에 죄와 죽음의 지배 아래 있을 때 예수님이 오셨고, 지금도 인생의 밤을 걷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그 빛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네 복음서가 제시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합적으로바라봄으로써, 왕이신 예수, 종이신 예수, 인자이신 예수, 그리고 하늘 독수리처럼 장엄한 예수를 모두 발견할 수있다. 로고스로 계시던 분이 육신을 입고 내려오셨으며,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부활하셨고, 이제는 우리의 왕이자친구요, 구원자로 함께하신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총체이며, 장재형목사가 많은 설교와 글을 통해 거듭 강조하는 바다. 한편, 그가 “슬픈 이야기”라고 표현한 복음이 결국 기쁨의 소식으로 완성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이 끝장나고 생명의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와 존재 조건이 전복되었으며, 생멸의 법칙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이제 영원한 생명을 소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결코 인간적 능력이나 지혜로 도달할 수 있는바가 아니며, 오직 성육신과 십자가 부활로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탄은 축제 이전에 경외의사건이다. 무한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몸을 취하셨다는 경이로움, 창조주가 피조물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신비가 예배와 찬양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 장재형목사는 또한, 성육신을 해설할 때 “건물이나 제도의 교회가 아니라,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옷을 입고 오셔서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하고 걸으며, 병을 고치고 눈물을 닦아주셨다. 그분은 심지어 죄인들의 집에 들어가 함께 밥상을 나누셨다. 이런 예수님의 인간적인 친밀함은 철저한 신성(神性)과 모순되지 않고, 오히려 신성의 가장 풍성한 표현으로 나타난다. 이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성육신의 영성’을 실천해야 함을 시사한다. 교회 예배당 안에만 머무르지 말고, 세상에 나아가 아파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며, 예수님처럼 낮아지고 예수님처럼 다가가는 것이 성육신 영성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장재형목사는 네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면모를 종합함으로써, 성육신이 우리에게 어떤변화와 구원을 가져다주는지를 다면적으로 해설한다. 네 복음서가 각자 다른 청중과 목적, 상황을 고려했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인류의 구세주’라는 신앙고백을 일관되게 담고 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이 사실을 철학적으로, 우주적 차원에서 풀어내는 데에 탁월한 장엄미를 보이며, 그 출발점이 “태초에말씀이 계시니라”는 명제이다. 이 말씀이 곧 로고스이고, 이 로고스가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그리고우리는 그 영광을 보았으며, 그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 성탄절은 그 놀라운 로고스의 탄생이 역사상으로 현현한 기념일이며, 그 시작이 없었다면 십자가와 부활도 있을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성탄이 곧 복음 전체의 핵심을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이며, 동시에 끝까지 관통하는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이 점을 일깨우면서, 성탄이 가져다주는 밝은 분위기와 행사가 결코 피상적으로흐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탄의 빛은 어둠에 찾아와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니, 어둠 속에서 절망하는 이들에게 실제로 다가가는 사랑의 실천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 Read more

L’interprétation du chapitre 16 de la première épître aux Corinthiens par le pasteur David Jang

I. Introduction : Le pasteur David Jang et la signification de 1 Corinthiens 16 Le pasteur David Jang (David Jang, fondateur de l’Université Olivet) ne se contente pas d’enseigner la Bible comme un simple savoir. Il intègre le contexte historique et la portée théologique, afin d’aider l’Église à vivre concrètement les enseignements bibliques au sein … Read more

张大卫牧师对哥林多前书第16章的诠释

Ⅰ. 序言:张大卫牧师与哥林多前书16章的意义 张大卫(奥利韦特大学创始人)牧师不仅仅停留于将圣经作为知识性的内容来传授,他更将历史背景与神学意义相结合,并引导信徒在现实的教会群体中实践出来。当他讲解哥林多前书第16章时,通过这一章所彰显的初代教会图景中,有一个关键场景被凸显出来:即应对耶路撒冷教会饥荒之际,各外邦教会所进行的捐献(奉献)的具体行动。 使徒保罗在先前的章节中讨论了方言与预言(第14章)、以及复活的奥秘(第15章)等深邃的神学主题后,终于在最后的第16章转向一个非常现实的议题——财务支援。这表明教会不仅应停留在属灵与神学的思辨中,还应面对实际生活中的问题:关怀处于困难中的弟兄姐妹,并满足他们的需要。张大卫牧师在对此进行诠释时强调,教会当超越抽象的信仰告白,成为在爱中实践、并承担财务责任的成熟群体。 Ⅱ. 初代教会的财政问题与团结精神 回顾一世纪初代教会的背景,耶路撒冷教会正遭受严重饥荒的困扰,生活极其贫苦。此时,保罗为耶路撒冷教会与外邦地区的教会之间搭建起团结互助的桥梁。无论是希腊地区(亚该亚省)的富裕哥林多教会,还是马其顿省的腓立比教会,尽管背景各不相同,却以合一的教会之身,共同为贫困中的弟兄们提供物质援助。这不仅展现了教会作为属灵交通的场所,同时也是通过实际生活的关怀来彰显信仰群体本质的意义所在。 张大卫牧师在此强调:“爱不是抽象的情感,而是行动。”耶稣说过:“要爱邻舍如同爱自己。” 这话要求我们在面对真正处于困境的人时,必须以具体的行动来回应。初代教会并没有对耶路撒冷教会的困境熟视无睹,而是通过募捐实际援助,体现了真挚的手足之情。现代教会同样不能在这一原则外豁免。张牧师强调,教会群体不应只是聆听和讨论圣道的场所,更应该在有需要之处慷慨奉献,以承担相应的责任。 Ⅲ. 奉献(捐献)的性质:超越自发之爱,成为群体的责任 在希腊语中用于“奉献”的词汇之一“logeia”(罗盖亚)不仅仅意味着“礼物”(donation),更带有“募款”(collection)的含义。由此可见,奉献并非个人随意、任意时机的自发行为,而是整个教会应当负担的责任与使命。保罗像指示加拉太教会那样,也同样吩咐哥林多教会参与奉献(林前16:1)。 对此,张大卫牧师提供了重要的洞见:教会的财务是以群体责任为基础的,通过有序的财务支持,不但可以帮助有困难的肢体,也可为福音拓展的事工提供资源。就像在初代教会中,富有的哥林多教会理应参与奉献一样,现代教会也应以群体责任感来鼓励财务参与。这不只是“有余才给”的选择,而是身为信仰群体当自然而然承担的使命。在此过程中,真正的爱之联合得以实现。 张牧师也将这一原则应用于现代教会的奉献文化与财务运营中。教会应每周定期奉献,并透明地加以管理和分配,使得在有需要时能够迅速、高效地给予帮助。这包括每主日进行的有组织的募捐,通过稳定成熟的奉献文化,使教会领袖在推动事工时无需临时动员,而能依托于已成型的财务体系。这种财务结构不仅确保了教会运作的稳定,更成为爱得以付诸实际行动的工具。 Ⅳ. 保罗的牧养方式与张大卫牧师的神学视角 保罗在传扬福音和教导教义方面一丝不苟。同时,他从不回避财务问题或现实需要。这与张大卫牧师所强调的“整合式信仰模式”是一致的。即使教义再明确,如果缺乏现实中的关怀,信仰就会变得空洞。同样,如果只顾现实问题却没有坚实的教义基础,教会也将很快迷失方向。 张牧师强调“正统”(Orthodox)的重要性,即只有建立在正确信仰告白和正统神学之上的教会群体,才能在现实问题上做出恰当回应。把爱付诸行动的同时,必须以真理为基准。正确的教义生发出正确的实践,而正确的实践又印证并彰显出教义的真实。当这两者分离,信仰就会失衡。 为耶路撒冷教会所进行的奉献正是这种教义与实践相结合的典范。保罗盼望在福音真理里合一的教会也能在现实生活中合一,其标志便是财务上的互助与支持。张大卫牧师指出,这正是对现代教会的重大挑战:教义不仅是抽象思维的结果,还应在教会经济、社会角色和对外宣教策略中扎根。 Ⅴ. 给现代教会的启示:有序财务运营与国际宣教网络 张大卫牧师对全球福音化和世界教会网络建设充满关注。就如保罗时代的教会通过跨区域奉献彼此帮助、支持耶路撒冷这个“母教会”一样,当代教会也应超越地理与文化界限,构建国际性网络。为此,教会必须建立透明高效的财务运营,各地教会负起责任,共同参与其中。 由张牧师引领的World Olivet Assembly(WOA)及各种国际宣教网络,正是延续初代教会精神的尝试。各地教会每主日筹集奉献金,将之累积,用于国际救济或宣教项目。这不仅仅是行善之举,更是整个群体共同承担宣教责任,并与世界各地的肢体教会建立深厚纽带的过程。 这种国际网络的构建,如同初代教会中的马其顿与亚该亚教会一样,为富足与贫困的教会之间架起合作的桥梁。这是现代教会扩展爱的本质的路径:富裕的教会献出财务资源,人力充足的教会贡献人力,神学资源丰富的教会提供教育,以此彰显肢体互助的原则。 Ⅵ. 提摩太、亚波罗与现场事工者的角色 保罗在第16章中提及提摩太,并嘱咐哥林多教会当他来访时要使他无所惧怕,并予以尊重(林前16:10)。这不仅关乎奉献与财务,更体现出初代教会的人际关系与对事工者的尊敬。提摩太作为保罗深爱并栽培的年轻领导者,在财务支持与牧养关怀的现场也承担要职。 张大卫牧师指出,教会内部的人力管理与尊重文化至关重要。教会不仅要在财务与事工上透明负责,更要对带领这些事工的人给予支持与信任。让像提摩太这样年轻的事工者没有顾虑地投入,使他们的恩赐得以充分发挥,也使教会更加丰盛。 至于亚波罗,哥林多教会希望他再次来访,但亚波罗却此时无法前往(16:12)。这情形表明,并非每位事工者随时都能配合教会的需求。张大卫牧师从中强调,教会应超越对特定事工者的执着,以“神的时间”为准则,具有耐心与灵活性。当某人无法即刻回应需求时,教会应探索其他途径,并信靠神的带领。这种态度有助于建立教会运作的弹性与适应力。 Ⅶ. 以爱行事的教会:警醒、坚固且有担当的群体 保罗在哥林多前书16章的末尾嘱咐:“你们务要警醒,在信仰中站立得稳,要刚强,要作大丈夫”(林前16:13),并补充说:“凡你们所行的,都要凭爱心而行”(16:14)。这要求教会群体不应陷于抽象观念中,而应通过实质行动彰显坚固的信心与成熟的担当。在此,“大丈夫”的意思并非强调性别角色的刻板印象,而是指代具备责任心与决断力的成熟度。 张大卫牧师借此强调,教会不仅仅是默想经文与讨论教义的场所,更应成为实际行动的群体。爱是通过行动来验证的。无论是财务问题、奉献、派遣人力、帮助困苦中的弟兄姐妹,一切的最终动机都应以爱为出发点。教会的警醒不仅是属灵的清醒,也是在现实挑战面前的积极回应态度。 这种态度对于现代教会的伦理与事工方向具有深远意义。以爱行事意味着在坚持教义正确性的同时,以关怀和帮助他人为优先,从而实现信仰洞察力、决断力与实际爱行的和谐统一。 Ⅷ. 司提反一家与家庭教会传统:群体服事的典范 保罗在16章中提及司提反一家,指出他们是亚该亚地区首先归主的果子,并决心服事众圣徒(林前16:15-18)。在早期教会时期,还没有专门的教堂,信徒常在家庭聚会。因此,一个家庭的奉献与委身对教会的生存与发展至关重要。司提反一家正是这样的榜样。 张大卫牧师借此提醒我们,教会不仅是每周一次聚会的属灵团体,更是将福音融入整个生活现场的生活共同体。无论是财政奉献、提供聚会空间、或奉献人力资源,这一切都在爱的联结中实现。正如司提反一家对初代教会的持续成长有决定性作用一样,现代教会也同样如此。当小组聚会、门徒培训、关怀行动在家庭中展开,教会群体更加牢固。 张牧师进一步强调,现代教会要在日常生活中实践信仰,不局限于主日礼拜。将神的爱带入工作场所、家庭与社会,为有需要的人服务,这正是教会在世间成为光与盐的方式。 Ⅸ. 财务负责人的重要性与犹大的教训:没有爱的财务是危机 在教会历史中,负责财务的人物一直十分关键。耶稣十二门徒中负责钱囊的犹大最终成为叛徒,这一事件清楚地表明,如果没有爱的动机,只是机械管理财务,将带来可怕的后果。张大卫牧师强调,教会的财务问题不仅是数钱与分配的技术问题,更需要爱为基础的内在品格与成熟度。 若财务负责人不诚实,缺乏爱心,将为教会群体带来难以复元的伤害。初代教会对财务问题极其谨慎,将此责任交付给值得信赖且充满爱心的人。当代教会同样如此。没有透明度、正直性和对群体的真爱,财务就会成为纷争与不信任的根源。 张大卫牧师藉此提醒财务负责人必须具备的品格:爱与诚实是非选择性的必需条件。管理财务的人须在神与群体面前心怀敬畏,将主所赐的资源正当地用于善工。 Ⅹ. “若有人不爱主,就应受咒诅”的含义 在哥林多前书16章末尾,保罗宣称:“若有人不爱主,这人可诅可咒。主必要来临”(林前16:22)。此语气强烈,强调无爱心的信仰何其空虚。爱不是仅仅一种情感,而是支撑信仰群体运转的核心动力。若有人不爱主,那么其信仰生活本质上等同于虚无。 张大卫牧师将此应用于现代教会:教会一切的奉献、关怀、事工协作,最终的动机都必须是对主的爱。若无此爱,再多的财务奉献、再华丽的讲道、再精妙的宣教策略都失去意义。没有爱的地方,信仰群体只是一台空转的宗教机器。 这一神学论述要求教会的一切活动最终都要扎根于爱之中。与主的再来(“马拉那他”)盼望相连,这条教训再次回溯张牧师一贯强调的“教义-实践-爱”的三重环扣。教会必须恢复对主的爱,以此爱为动力走向世界。 ⅩⅠ. 综合愿景:张大卫牧师对哥林多前书16章诠释的启示 哥林多前书16章可视为一个总结段落。保罗在之前章节中处理了舌音、预言、复活等深奥的属灵课题,而在最后一章却回到现实与具体的财务议题。这彰显信仰生活绝非停留在抽象命题或高雅的教义讨论中,而必须落实在具体的生活场景中。 透过张大卫牧师对本章的诠释,可以概括出以下要点: … Read more

張ダビデ牧師によるコリント人への第一の手紙16章解説

Ⅰ. 序論:張ダビデ牧師とコリント第一16章の意味 張ダビデ(オリベット大学設立者)牧師は、聖書を単なる知識の伝達にとどめず、歴史的背景と神学的意味を統合し、それを現実の教会共同体で生かすことを目指す説教者であり牧会者である。彼がコリント人への第一の手紙16章を扱う時、この章は初代教会の姿を明確に映し出す重要な場面を提供する。それは、エルサレム教会の飢饉に応えるため、異邦人地域の諸教会が行った献金(募金)の取り組みという、極めて具体的な行動である。 使徒パウロは、これまで異言と預言(14章)、復活の神秘(15章)という深遠な神学テーマを論じてきたが、最後の16章では非常に現実的な財政支援の問題に言及する。この流れは、教会が単に霊的・神学的思索に留まらず、困窮する兄弟姉妹の必要を満たし、具体的な行為へと踏み出すべきであることを示している。張ダビデ牧師は、この点を解き明かしながら、教会が抽象的な信仰告白だけでなく、愛の実践と財政的責任をも担う成熟した共同体となるべきだと強調する。 Ⅱ. 初代教会の財政問題と連帯の精神 1世紀当時、エルサレム教会は深刻な飢饉に苦しんでいた。その際、パウロはエルサレム教会と異邦人地域教会を結ぶ連帯の架け橋を築いた。たとえば、ギリシア地域(アカヤ)の豊かなコリント教会やマケドニアのピリピ教会などは、出自や背景が異なるにもかかわらず、「一つのからだ」として困窮した兄弟を助けるため、物質的支援に乗り出したのである。こうした行動は、教会が単なる霊的交わりに終始せず、生活に根差した互いの世話を通じて信仰共同体の本質を示す点で意義深い。 ここで張ダビデ牧師は、「愛は抽象的な感情ではなく、具体的な行動である」と強調する。イエスが「隣人を自分自身のように愛せよ」と命じたように、実際に困っている者を放置しない行いが求められる。初代教会は、飢えに苦しむエルサレム教会を放置せず、財政を集め支援することで真実の兄弟愛を示した。現代の教会も同様であるべきだ。張牧師は、教会共同体が単に御言葉を聞き議論する場で終わらず、必要がある所には資源を惜しまず提供する責任感を持たねばならないと説く。 Ⅲ. 献金の性格:自発的愛を超えた共同的責任 「献金」を意味するギリシア語の一つ「ロゲイア(logeia)」には、単なる「贈与(donation)」でなく「募金(collection)」のニュアンスがある。これは、献金が好きな人が好きな時に行う任意の行為ではなく、教会全体が責任をもって取り組むべき共同体的課題であることを示唆している。パウロはコリント教会に、ガラテヤ諸教会へ命じたように、同様に献金参加を指示している(Ⅰコリント16:1)。 張ダビデ牧師は、ここに重要な洞察を見出す。教会の財政は共同体的責任に基づき、それによって困窮者を助け、さらに福音拡大の働きにも貢献する。初代教会では、裕福なコリント教会がある意味「義務」として献金に参加したように、現代教会も共同責任のもと財政面で参加を促すべきなのだ。これは「余裕があれば与える」という任意性を超え、信仰共同体として当然担う使命であり、その中で真の愛の連帯が結実する。 張牧師はまた、これを現代教会の献金文化や財政運営に適用する。教会は毎週規則的に献金を準備し、それを透明かつ的確に管理・運用することで、必要な時に迅速・効率的に資源を振り分けられるよう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週ごとの体系的な献金習慣が定着すれば、指導者が毎回声を張り上げる必要はなくなる。安定した財政基盤は、単なる教会運営の安定化に留まらず、愛の実践を具体的に支える道具となる。 Ⅳ. パウロの牧会スタイルと張ダビデ牧師の神学的アプローチ パウロは福音宣教や教理的指導に徹しながらも、財政問題や現実的ニーズを無視しなかった。この態度は、張ダビデ牧師が強調する「統合的信仰モデル」と響き合う。いかに明快な教理を有していても、現実的なケアが欠如すれば、信仰は空虚となり得る。一方、現実問題に偏り、教理的基盤を欠けば、教会は方向性を失う。 張牧師は「オーソドックス(正統)」、つまり正しい教理を重視する。正統的神学と健全な信仰告白を土台とする共同体こそ、現実問題にも正しく対処できるのである。愛を行動化する時、愛は決して真理から逸脱せぬよう、教理が指針となる。正しい教理は正しい実践を生み、正しい実践は教理を生き生きと証する。この二つが切り離されれば、信仰はバランスを失ってしまう。 エルサレム教会への献金活動は、こうした教理と実践が結合した一例である。パウロは、福音の真理によって一つとされた教会が、生活現場でも一つとなるよう望み、その証が財政的な助け合いに表れた。張ダビデ牧師は、これが現代教会への大きな挑戦であると語る。教理は抽象思考で終わらず、教会の運営、社会的役割、対外的宣教戦略にまで根を張るべきだとする。 Ⅴ. 現代教会への教訓:体系的財政運営と国際的宣教ネットワーク 張ダビデ牧師は、グローバルな福音化や世界的教会ネットワーク構築にも関心を寄せる。パウロ時代の諸教会が地域間献金で互いを助け、「母教会」であるエルサレムを支援したように、現代教会も地理的・文化的境界を越えた国際ネットワークを築く必要がある、と彼は強調する。そのためには財政が透明かつ効率的に運営され、全ての地域教会が責任をもって参加する体制が求められる。 張牧師が率いるWorld Olivet Assembly(WOA)や各種国際宣教ネットワークは、こうした初代教会の精神継承を目指す試みである。各地の教会は主日ごとに献金を行い、それを蓄え、国際的な救済活動や宣教プロジェクトに投入できる。これによって共同体全体が宣教を担い、世界中の兄弟姉妹教会との絆を深めていく。 こうした国際的ネットワークは、マケドニア教会やアカヤ教会のように、裕福な教会とそうでない教会とを結ぶ通路を作り出す。豊かな教会は資金を、人的資源に富む教会は人材を、神学的資源が豊かな教会は教育を供給し合うことで、互いを生かす「からだの原理」が実現する。これこそ現代教会が愛の本質を拡大する道である。 Ⅵ. テモテとアポロ、現場の働き人の役割 パウロは16章でテモテを言及し、彼が訪問した際には恐れなく迎え、敬意を払うようコリント教会に求める(Ⅰコリント16:10)。ここには、献金や財政問題を超えて、初代教会内部の人間関係や働き人を尊重する文化が反映されている。テモテは、パウロの愛を受けて成長した若い指導者であり、財政支援や牧会的配慮などの現場でも重要な役割を果たした。 張ダビデ牧師は、ここから教会内部の人材マネジメントと尊重文化の必要性を説く。教会は財政や活動を透明にするだけでなく、それを担う人々を支え、信頼する共同体であるべきだ。テモテのような若い働き人が萎縮せず奉仕できるようにするには、教会が彼を軽視せず、信頼をもって受け入れることが不可欠である。そうすることで働き人は賜物を十分に発揮し、教会全体がさらに豊かになる。 アポロに関しては、コリント教会は再訪を望んだが、アポロは直ちに赴くことができなかった(16:12)。これは、必ずしも望む働き人が望む時に動けるわけではない現実を示す。張牧師はこれを通し、教会が特定の人物への固執を避け、「神の時」を待つ忍耐と柔軟性を養うべきだと語る。必要な人物が今動けなくても、教会は別の方法を探り、神の導きを信じなければならない。この姿勢が教会運営に柔軟性と余裕をもたらす。 Ⅶ. 愛によって働く教会:目覚め、強くあり、責任ある共同体 パウロはコリント第一16章の末尾で「目を覚まして、信仰に堅く立ち、男らしく強くあれ」(16:13)と言い、続けて「あなたがたの行うすべてのことを愛をもって行いなさい」(16:14)と勧める。ここで「男らしく」とは性別的固定観念を指すのではなく、責任感と決断力に富んだ成熟を意味する。 張ダビデ牧師は、この箇所を通して、教会が聖書黙想や教理議論に終わらず、現実に行動する共同体となる必要性を指摘する。愛は行動で証明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愛をもって行う」とは、財政、献金、人材派遣、困窮者ケアなど、あらゆる分野で愛を原動力とすることだ。教会が目覚めているとは、単に霊的眠りから覚めるだけでなく、現実問題や挑戦に積極的に取り組む態度を指す。 この姿勢は、現代教会が倫理的・宣教的方向性を定める上で重要である。愛を原動力とすることは、時に教理的明確さを維持しつつも人々を世話するという、均衡の取れた歩みを意味する。張牧師は、信仰的洞察、決断力、実践的愛が調和した教会像をここに描く。 Ⅷ. ステパナの家と家庭教会伝統:共同体奉仕のモデル パウロは16章でステパナの家について触れ、彼らがアカヤ地方における初穂であり、聖徒に仕えることを自発的に決意した家庭だと記す(16:15-18)。初期教会には専用の礼拝堂がなく、主に家庭で集会していたため、ある家庭の献身は教会の存続と発展に決定的な役割を果たした。ステパナの家はその好例である。 張ダビデ牧師は、これによって教会が週一度の礼拝共同体に限られず、生活全体を福音に浸透させる生活共同体であることを再認識させる。財政献身、場所の提供、人材奉仕など、全てが愛という絆の中で為される。ステパナのような献身的家庭があったからこそ、初代教会は絶えず成長できた。現代教会においても同様だ。建物だけでなく、家庭における小グループ集会、弟子訓練、愛の分かち合いが教会共同体を一層強固にする。 張牧師はさらに、これが現代教会の日常への適用例だと説明する。教会生活は主日礼拝に限定されない。職場や家庭、地域社会で神の愛を実践し、教会のビジョンを共有し、困窮者を助ける行為自体が信仰生活である。こうして教会は世のただ中で光と塩となり、イエスの命令を具体化する。 Ⅸ. 財政担当者の重要性とユダの事例:愛なき財政運営の危険性 教会史において、財政担当者は常に重要な位置を占める。イエスの十二使徒の中で財務を預かっていたユダは裏切り者となり、愛を欠いた財政運営がもたらす悲劇を露呈した。張ダビデ牧師は、この点を強調し、教会財政は単なる金勘定ではなく、愛と人格的成熟を必須とする領域であると指摘する。 財政担当者が不正直であったり、愛が欠如しているなら、教会共同体に深い傷を残し、回復困難な事態を招く。初代教会は財政問題を慎重に扱い、信頼でき、愛に満ちた者に責任を託した。現代教会も同様である。透明性と誠実さ、そして共同体への深い愛なしには、財政は紛争の火種となり、信頼を破壊する要因になり得る。 張牧師は、教会の財政担当者が備えるべき徳目を再度想起させる。愛と誠実さは必須条件であり、財政を扱う者は神と共同体の前で畏れをもって職務に当たり、主から委ねられた資源を正しく用いなければならない。 Ⅹ. 「主を愛さない者は呪われよ」の意味 コリント第一16章の終わりでパウロは、「もし主を愛さない者があれば、その者は呪われよ。主は来られる(マラナタ)」(16:22)と強烈な表現で断じる。これは、愛なき信仰がいかに無意味であるかを示す警告である。愛は単なる感情ではなく、信仰共同体を動かす原動力であり、主を愛さぬ信仰は実質的に信仰とは呼べないという強いメッセージが込められている。 張ダビデ牧師は、この箇所を現代教会に適用し、前述した財政や実践的ケア、相互協力など、全ての動機が「主への愛」に基づくべきだと強調する。愛がなければ、いかに多くの献金を集め、優れた説教を行い、精密な宣教計画を立てても空虚だ。愛なき場所では、教会は虚しい宗教的機械装置に過ぎない。 この神学的主張は、教会のあらゆる活動が最終的に愛に根ざすべきことを要求する。主の再臨(マラナタ)への希望と結びつくこの宣言は、張牧師が一貫して強調する「教理・実践・愛」という三重連環を再確認させる。教会は主への愛を回復し、その愛をもって世界へと進むべきなのである。 ⅩⅠ. 総合的ビジョン:張ダビデ牧師によるコリント第一16章解釈が与える教訓 コリント第一16章は締めくくりの位置を占める。パウロは異言と預言(14章)、復活(15章)という深遠な霊的テーマを扱った後、16章で具体的な財政問題に立ち返る。これは、信仰生活が抽象的な命題や高尚な教理的議論に終始せず、現実的な生活の中で顕現されねばならないことを示している。 張ダビデ牧師がこの章を解説する際、繰り返し強調する点は以下である。 結論:コリント第一16章が今日の教会に示す意味 … Read more

Rev. David Jang’s Interpretation of 1 Corinthians 16

I. Introduction: David Jang and the Meaning of 1 Corinthians 16 Pastor David Jang (Jang Dawit, founder of Olivet University) does not merely provide an intellectual understanding of the Bible. Rather, he integrates historical context and theological significance, guiding believers to bring scriptural truths into the reality of church community life. When David Jang addresses … Read more

장재형 목사의 고린도전서 16장 해설

Ⅰ. 서론: 장재형 목사와 고린도전서 16장의 의미 장재형(장다윗, 올리벳대학교설립) 목사는 성경을 단순히 지식적으로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적 배경과 신학적 의미를 통합하며, 이를 현실의 교회 공동체 속에서 살아낼 수 있도록 돕는 설교자이자 목회자다. 그가 고린도전서 16장을 다룰 때, 이 장을 통해 초대교회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 있어 한 가지 핵심 장면이 부각된다. 바로 예루살렘 교회의 기근에 … Read more

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 경영대학원, 가을 분기에 마케팅 관리 및 거시경제학 개설

가을학기가 시작되면서 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의 비지니스스쿨 학생들은 마케팅 관리와 거시경제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케팅 관리 과목은 제품 개발, 가격 전략, 고객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채널 관리를 통해 마케팅 기회를 발굴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목은 Benjamin Kim 강사가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씨는 이번 분기에 마케팅 관리를 가르치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밝혔습니다. 학생들과의 첫 수업에서는 서로를 소개하고 친숙도를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 Read more

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의 Music College는 새 분기에 콘서트 이벤트를 계획합니다.

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의 Jubilee College of Music은 지난 금요일 Riverside 캠퍼스에서 겨울학기 오리엔테이션을 개최했습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Jubilee College of Music 부학장인 Emily Ko 박사는 겨울학기 동안 대학이 계획하고 있는 특별 행사와 수업 일정을 공유했습니다. 대학원생 연주회와 함께 지역 연주회, 교회 행사 등을 통한 학생 체험여행도 예정돼 있습니다. Jubilee 음악대학원생인 Shawn Pang이 분기말에 대학원 콘서트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 Read more

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의 정보 검색 과정을 가르치는 OIT 겸임 Google 교수

샌프란시스코의 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의 Olivet Institute of Technology (OIT)는 다가오는 봄 분기에 정보 검색이라는 새로운 과정을 개설할 예정입니다. 정보 검색은 컴퓨터 시스템이 텍스트 기반 또는 다른 형식의 정보에 대한 사용자의 쿼리에 응답하는 프로세스를 의미합니다. 이는 특정 주제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는 과정으로, 자연어 처리(NLP)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이 과정에서는 Google의 수석 엔지니어로 재직 … Read more